팔았다고 주장한 천경자의 ‘꽃과 여인’ 검찰 압수수색하자 반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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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12면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송향선(62·여) 감정위원장은 위작 논란이 있는 ‘빨래터’에 대해 두 차례 진품 판정을 내린 감정 전문가다. 그가 남의 그림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진품 판정’ 송향선 감정위원장은 작품 횡령 혐의 휘말려

서울 인사동의 가람화랑 대표인 송씨는 지난해 1월 4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빨래터’ 감정에 참여해 진품 판정을 내렸다. 당시 1차 감정에선 감정위원장을 맡았다. 1차 판정이 공정성 시비가 일면서 확대 구성된 2차 감정단에도 감정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런 송씨가 지인 이모(50·여·서울 송파구)씨가 소유하고 있던 여류 화가 천경자씨의 미인도인 ‘꽃과 여인’(사진)을 횡령한 사건에 휘말려 조사를 받고 있다. 천씨가 1960년대 후반에 그린 ‘꽃과 여인’은 시가 6억원대라고 한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두 차례의 ‘빨래터’ 감정 결과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미술계의 시각이다.

그림을 소유했던 이씨가 송씨를 업무상 횡령, 배임 혐의로 고소한 것은 2007년 3월 말께다. 이씨는 고소장에서 “송씨가 한 달 전에 ‘꽃과 여인’ 을 가져간 뒤 ‘다른 사람에게 4억원에 팔았다’며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수사가 시작되자 “화상 정모씨를 통해 제3자에게 그림을 팔았다. 하지만 고객비밀 보호 차원에서 신원은 밝힐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그는 “정씨로부터 받은 돈”이라며 그림값 4억원을 이씨에게 지급하려 했다. 그러나 이씨가 받지 않자 중개수수료 10%를 제외한 3억6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처음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지난해 초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증거가 부족하다”며 송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이씨는 이에 불복 항고를 했고 서울고검 K검사가 직접 계좌추적을 했다. 송씨가 맡긴 공탁금 중 수표 1억원(1000만원짜리 10장)이 송씨가 제3자에게 그림을 팔았다고 한 시점보다 먼저 송씨의 계좌에 입금됐던 돈임을 밝혀냈다. 또 ‘잔금 3억원을 어떻게 받았느냐’는 추궁에 송씨는 “전부 현금으로, 사과 궤짝으로 받았다”고 했다가 “계좌로 받았다”고 하는 등 말을 자주 바꿨다.

K검사는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 지난해 4월 말 재수사를 지시했다. 재수사의 방향은 ▶‘꽃과 여인’의 행방을 찾고 ▶공탁금 3억6000만원의 실제 주인이 송씨인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었다. 재수사를 담당한 형사8부가 지난해 8월 가람화랑과 집을 압수수색한 직후 송씨는 여직원을 통해 이씨에게 ‘꽃과 여인’을 되돌려줬다. 가져간 지 1년6개월 만이었다.

검찰은 송씨가 그림을 돌려준 점 등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K검사는 10월 “여전히 수사가 미진하다”며 다시 돌려보냈다. 사실상 횡령 혐의가 인정되니 기소하라는 의미였다. 원 주인 이씨도 “그림을 돌려받았지만 송씨에 대한 처벌을 원해 고소를 취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담당 검사는 “송씨가 이씨의 그림을 가져갔다가 1년6개월 만에 돌려준 것 등 사실관계는 일단 확정이 됐다”며 “해외 출장 중인 송씨가 귀국하는 대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불구속기소하거나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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