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흐름읽기>쇼핑중독증 30대주부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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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서울 잠실에 사는 주부 金모(35)씨.지난주 토요일 아침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를 대충 챙겨 내보낸 다음 집을 나섰다.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는 남편은 전날밤 밤낚시를 떠나고 없었다.

金씨의 행선지는 K백화점.백화점을 향해 가면서 무엇에 쫓기는듯했던 그녀는 오전10시35분 막 문을 연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면서 표정이 밝아졌다.백화점 의류매장들을 기웃거리며 느긋하게 이옷 저옷을 살펴보고 있는데 한 점원이 말을 건넨다.“언니한테 딱 맞는 옷이 하나 있어요.”지난 4월초 봄 정기세일기간 열흘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백화점을 들락거리던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프랑스 수입의류 코너의 점원이었다.

점원이 권하는 옷은'공주'스타일의 1백20만원짜리 여성정장.딱이 입고 갈 곳도 없으면서 서슴없이 구입했다.

金씨는 이날 무려 1백80만원어치의 옷을 사고서야 쇼핑을 끝내고 아파트로 돌아왔다.도착한 시간은 오후2시30분.쇼핑하는데 4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金씨가 쇼핑중독증에 걸리게 된 것은 3년전.밤낚시를 떠나는 남편과 심한 말다툼을 한 다음날 스트레스를 풀려고 집을 나선 그녀는 마땅히 갈데가 없자 백화점에 들러 마구 쇼핑하고 나니 기분이 풀렸다.그날 이후 틈만 나면 백화점으로 달려가 이것 저것 구입하는 버릇이 생겨 결국 지금과 같은 상태로까지 진전됐다.

“이제는 백화점에 들러 예쁘다 싶은 옷을 보면 사지 않고 못배겨요.그냥 집에 돌아오는 날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입지도 않고 처박아둔 옷이 수북이 쌓여있지만 또다시 새옷을 산다는 그녀는 심한 경우 한달 옷 구입비가 4백만원을 넘을 때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남편에게서 혼쭐난 적도 많지만 그때뿐이라고 했다.어떨 때는 남편이 신용카드를 뺏어버리기도 하나 금방 다시 만들고 그것이 안되면 친구에게서 카드를 빌려 가기도 한다.그녀의 남편은 부인의 이같은 쇼핑행태 외엔 특별히 나무랄 일이 없기 때문에 가끔 야단만 칠뿐 그냥 넘어간다고 한다.병원에 데려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쇼핑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려 정신건강상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는 것같아 그만두었다고 한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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