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국민연금] 下. 그래도 제도는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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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0년 11월 불의의 사고로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이모(47)씨. 그는 이듬해 초부터 매달 33만원의 장애연금을 받는다. 이씨는 자영업자로 매달 1만6000여원의 보험료를 냈다. 소득이 일정치 않아 보험료를 내기 싫었지만 강제 가입이라는 말을 듣고 1999년 4월부터 보험료를 냈다. 이씨가 지금까지 받은 연금은 모두 1350여만원, 낸 보험료는 31만7000원이다. 이씨는 평생 연금을 받는다.

지난달 8일 연금제도를 비판한 '국민연금의 비밀'이 인터넷에 등장한 뒤 연금비판이 확산되면서 이제는 폐지론으로 번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연금을 없앨 수 있을까.

이씨의 예는 연금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연명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중앙대 교수)은 "국민연금은 고쳐야 할 부분이 산적한 불완전한 제도"라고 인정하면서도 "폐지하자는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됐고 무책임한 비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인데도 제도적 노후대책은 무방비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이 불완전하나마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왜 국민연금인가=우리나라는 2000년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이 7.2%를 넘어서면서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2019년 14.4%가 돼 노령사회가 된다. 노령화에서 노령사회로 가는데 19년 밖에 안 걸렸다.

그러다보니 2000년에는 젊은 사람 열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면 됐으나 2030년이 되면 3.5명이 노인 한 명을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급속한 핵가족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부모를 부양하려는 젊은이가 점점 줄고 있다.

또 직장인들의 보루였던 퇴직금은 어떤가. 취업자 중 30.3%만이 퇴직금이 적용되는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한다. 또 최근 몇년 사이에 퇴직금 누진제를 없애고 중간정산한 데가 많다. '퇴직금=목돈'의 등식이 사라진 지 오래다.

자신의 노후는 자신이 책임지고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민의 35.5%는 노후준비를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준비하는 사람은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28.4%), 개인연금(15.9%), 예금 및 적금(13.6%)의 순이었다.

저축을 하자니 저금리 상황에서 별로 매력이 없다. 또 개인연금에 비해선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3~6%포인트 높다.

◇제도는 존속해야=운영에 대한 불신이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1국장은 "그간 기금운용 제도가 불투명해 불신이 계속됐고 여기에다 보험료 징수나 연금지급 과정에서 생긴 불만이 합쳐져 일시에 표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의 결론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연금제도는 존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되지 본질과 관련 없는 문제점을 근거로 제도를 없애자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서미성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일부 문제점 때문에 연금제를 폐지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폐지 주장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문혜진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도 "저소득층.비정규직 등이 배제돼 있고 기금운용을 정부가 좌우하는 점도 고쳐야 한다"며 "국회에서 심도 있게 토론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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