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代 이 사람을 주목하라] 27. 열린우리 우제항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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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우제항(경기 평택갑.55) 의원은 이력이 복잡하다. 서울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7년 행정고시에 도전했지만 낙방했다. 꿈을 접고 무역회사에 다니던 어느 날 자신이 낙방자 중 점수가 가장 좋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운을 얻어 재도전했고 이듬해인 78년 합격했다. 그리고 동력자원부.문화공보부.부산시 등을 돌며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는 82년 경찰청 근무를 자원했다. "제복이 멋져 보여 지원했다가 20여년을 호되게 고생했다"고 한다. 경기도 안성경찰서장을 할 때인 92년엔 목숨을 잃을 뻔했다. 심한 집중호우로 고립된 마을의 주민들을 대피시키던 중 전신주가 넘어졌고, 끊긴 전선이 덮쳐 감전사할 뻔한 위기를 맞았으나 가까스로 모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의 삶은 봉사를 위해 주어진 덤"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4년 국회경비대장, 95년 서울 영등포경찰서장을 하면서다. 국회 앞에서 매일 발생하는 시위에 대처하면서 '도대체 왜 이래야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고 한다. 특히 "고엽제 피해자인 아버지는 시위대에, 친아들은 전투경찰로 진압의 선봉에 선 것을 보고 마음 아팠다"고 한다. 시위와 씨름하면서 그는 "정부의 일선 부처가 시위 소지가 있는 문제나 각종 민원에 대해 참을성 있게 대화하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려는 의지가 부족해 쓸데없이 소모전을 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정치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고향인 평택에서 무소속으로 나왔지만 낙선했다. 이후 국민통합21에 들어갔으나 2002년 대선 전날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자 맨 먼저 비판성명을 내고 탈당했다. 그러곤 열린우리당의 창당멤버가 됐다.

禹의원은 정치에 입문할 때 간직한 꿈을 여전히 실현해 보겠다는 각오다. 어떤 문제가 시위로까지 번지지 않게끔 나름대로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것도 목표다. 주한미군의 평택이전 문제에 대해선 이주대책비 등 현실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 주민의 문화충격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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