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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5. IOC 위원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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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옥중에서 세 번째 쓴 IOC 위원 사퇴서.

 1년 넘게 구치소 생활을 했다. 2005년 봄, 5월 가석방 예정자로서 모든 심사를 마치고 출소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김정길 체육회장이 신임 인사차 면회를 왔다. “KOC 총무로 누가 좋겠느냐”고 물어서 “영국에서 공부하고, 국회의원도 지낸 김상우가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6월에 싱가포르에서 IOC 총회가 열리니 그 전에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회장은 “대통령께 건의하겠습니다”하고 돌아갔다. 그 후 아무 소식이 없다가 마드리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갔다는 말만 들었다. 그런데 한 주간지에 ‘김운용씨가 IOC 부위원장 직을 사퇴하지 않아 평창의 겨울올림픽 유치에 방해가 된다’는 요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몇 차례 면회를 왔다. 김 실장은 연세대 후배이자 나의 국회의원 후원회장이었다. 김 실장은 ‘내가 싱가포르에 가면 IOC 위원들에게 돈 준 것을 폭로한다 해서 IOC 위원들이 전전긍긍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전해줘 일소에 부쳤다.

김정길 회장이 면회를 왔다고 하기에 사절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하루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데 김우식 실장과 함께 김정길 회장이 들어왔다. 김 회장은 “마드리드에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싱가포르 총회에서 김운용 제명 투표를 할 것이고, 찬성이 3분의 2 이상 나오면서 평창에 불리하니 사퇴하는 것이 좋다는 여론”이라고 말했다.

나는 ‘옥중 사표는 국제적으로 정부의 압력으로 받아들여지니 5월 말 가석방된 후에 자유로운 상태에서 명예롭게 사퇴하겠다’는 한글 각서를 써줬다. 그랬더니 “이것 갖고는 안 된다”며 정식 사표를 요구했다. 그래서 영문으로 ‘IOC 부위원장과 IOC 위원 직을 사퇴한다’는 내용의 사퇴서를 썼다.

그런데 다음날 청와대 윤후덕 비서관이 다시 구치소로 찾아왔다. 사퇴서에 일자가 ‘6월 15일’로 돼있는데 5월 날짜로 다시 쓰라는 것이었다. 구치소장의 소인을 찍어 5월 9일자로 다시 썼고, 직접 IOC에 보내라고 해서 가족을 시켜 보냈다. 옥중에서 사퇴서를 세 차례나 쓴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의 가석방도 취소됐다. IOC 위원 사표가 수리된 뒤에 석방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한 달간 더 구치소에 있다가 IOC가 사표를 처리한 뒤인 6월 30일 가석방됐다.

IOC에서는 ‘사퇴서가 자의냐, 타의냐’는 논의가 있었지만 그대로 수리가 됐다. 사표가 수리됐다는 로게 위원장 명의의 편지는 1년 후인 2006년 5월에야 KOC에서 우편으로 전달했다. 1년 동안 누가 갖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198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19년 동안 부위원장으로서, 집행위원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일해왔으나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IOC 위원 자리를 물러나게 됐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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