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데 노사 고통분담” 774곳서 임금 동결·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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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아스공항 노사는 지난해 11월 26일 임금을 동결했다. 1999년 노조가 설립된 뒤 임금을 동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사 노조는 민주노총 운수산업노조에 소속돼 있다.

이병민 노조사무국장은 “지난해 고유가에 환율 폭등, 금융위기 같은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회사의 경영 사정이 아주 안 좋아졌다”며 “조합원들이 이런 사정을 감안해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 안정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기내식 공급, 항공기 안전점검 등이 주 업무다. 지난해 수출입 물량이 줄면서 화물기 취항이 크게 줄었다. 전체 1650여 명의 직원 가운데 화물조업을 하는 700여 명의 일자리가 위협받았다. 박병욱 사장이 지난해 8월 전체 직원을 상대로 긴급 경영설명회를 열어 회사 사정을 설명한 뒤 임금 동결을 제안했다.

노조는 고민에 빠졌다. 외환위기 직후인 99년에도 13.7%나 올릴 정도로 매년 임금을 인상해 왔는데 갑자기 임금을 동결하면 조합원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이 사무국장은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파업을 한다고 임금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파업할) 여건도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합원 설득에 나섰다. 그런데 조합원의 반응이 의외였다. 오히려 “이렇게 어려울 때는 노사가 힘을 합치는 것이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 무엇보다 고용 안정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임금 동결안은 73%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 회사 노사상생팀 박병창 차장은 “창사(88년) 이래 매출액이 감소한 것은 지난해가 두 번째”라며 “노조가 경영진의 고충과 조합원의 열망을 적절히 파악해 임금 동결에 동의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물론 회사는 고용 보장을 약속했다. 또 회사의 경영 사정이 좋아지면 임금을 최대한 보전해주기로 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런 경제위기에는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면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조합원을 위하는 길”이라며 “이제는 생산성과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처럼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사업장이 크게 늘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해 100인 이상 사업장 6745곳의 임금교섭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교섭이 타결된 5667개 중 13.7%인 774곳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1월 12곳에 불과했으나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11월에 85곳, 12월 310곳으로 늘었다. 노동부 이채필 노사협력국장은 “올해는 이런 기업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 김환일 박사는 “고용 안정은 노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자구 노력”이라며 “위기 때 노사가 협력하게 되면 회사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사가 임금 교섭에서 서로 양보해 고용을 안정시킬 경우 근로감독과 세무조사를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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