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시시각각

좌파가 살아남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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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리멸렬(支離滅裂). 유럽의 좌파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프랑스에서 그리스, 독일에서 헝가리까지 유럽에서 좌파는 기능 부전 상태에 빠졌다.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처지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스페인·포르투갈·오스트리아 등 4개국뿐이다. 그나마 영국의 노동당은 무늬만 좌파다. 사회당·사회민주당·좌파민주당·노동당·공산당…이름은 달라도 좌파 정당이 날개 꺾인 새 신세인 것은 유럽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유럽의 좌파는 이제 박물관 창고에 처박혀야 할 운명인가.

 정상적이라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럽의 좌파에 재생 기회가 돼야 마땅하다. 좌파 진영이 그토록 비판해 왔던 시장만능주의, 고삐 풀린 자유방임형 금융자본주의가 추악한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유럽의 우파 정부들은 지금 앞다퉈 좌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기관을 국유화하고,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자동차 업계에 혈세를 쏟아붓는가 하면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파 정부가 급격히 좌회전하고 있는데도 좌파 정당의 지지율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프랑스의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옹은 “이것은 역설을 넘어 ‘불의(不義)’”라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다. 덩굴째 굴러온 호박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꼴이니 카를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통곡할 일이다.

보기에 딱했던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가 6일자에 ‘유럽 좌파를 재창조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자본주의의 지각변동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유럽 좌파에 대한 충고 같기도 하고, 조롱 같기도 하다.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전도사인 FT의 진단은 냉정하다. 우선 유럽에서 좌파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할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35%에 불과한 지지율로는 단독 집권이 불가능한 만큼 어떻게 하면 중도 진영과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라는 것이다. 민간과 공공 부문 노조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전략으로는 절대 중도 진영을 포섭할 수 없다는 현실적 자각에서 새 출발을 하라는 충고다.

유럽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국가 재정에 의존한 사회·복지 정책은 감당이 불가능하므로 큰 정부를 지향하는 좌파 철학은 구조적으로 ‘작동 불능’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라는 지적도 덧붙인다. 결국 국가가 아닌 시장이 공공선(公共善)을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똑똑한 시장’을 만드는 방안에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 좌파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현실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과 한국의 좌파가 처한 딜레마의 본질 자체는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와 집권 여당의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최근 들어 다소 올랐다고 하지만 여전히 집권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이다. 무엇이 살길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의사당 점거 농성으로 한 고비를 넘겼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

 한국의 좌파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기업이 하는 것이지 국가가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실업자를 다시 훈련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느냐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또 일자리를 못 구해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의 좌절과 울분을 생산적 창의로 바꿔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국가의 개입과 분배적 정의를 내세우는 한물간 사고로는 집권은커녕 존속도 어렵다. 세계화를 현실로 인정하고, 시장과 기업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한국 좌파가 살아남는 길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