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야 놀자] 고객 투자성향 조사한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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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나의 투자 성향은 공격형일까, 위험 회피형일까?” 2월부터 펀드 투자를 위해 판매사 영업점을 찾는 투자자들은 이런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새로 만들어진 ‘표준 판매 매뉴얼’에 따라 펀드 판매사들은 1년에 1회 이상 영업점을 찾는 고객들에 대한 투자 성향 조사를 해야만 합니다. 또 판매사들은 펀드별 투자위험등급을 매겨 투자 성향과 동일 레벨의 위험등급을 가진 펀드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불완전 판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좋은 취지의 제도임에도 업계 현실을 놓고 볼 때 시행착오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가장 큰 난제는 펀드의 리스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겁니다. 펀드의 투자위험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투자위험은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위험’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가격 변동 위험은 ‘표준편차’라는 위험통계량으로 측정할 수 있으나 펀드에는 여러 가지 숨겨진 손실 위험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의 평상시 가격변동성은 국·공채 펀드에 비해 작은 편입니다. 신용위험은 기업 부도라는 극단적 상황이 전개돼야만 손실로 현실화하기 때문입니다. 고배당주 펀드의 가격변동성은 일반 대형주 펀드에 비해 작은 편입니다. 배당주 중에는 거래량이 극히 적은 주식이 많습니다. 따라서 펀드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 주식을 시장에 매도할 경우 예상치 못한 손실을 배당주 펀드 투자자가 떠안아야 하는 ‘유동성 위험’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의 잣대로 펀드의 모든 위험을 측정할 수 없단 말입니다.

펀드 위험등급을 판정하는 주체는 판매사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시행을 눈앞에 두고도 관리 체계를 완비했다는 판매사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 판매사는 펀드 투자설명서에 정의한 위험등급을 그대로 채택할 요량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투자설명서에 명기된 위험등급은 유사펀드임에도 천차만별인 데다 등급 부여 방식이 주먹구구식입니다. 예를 들어 원금보존추구형 주가연계펀드(ELF)에 대한 위험등급이 A운용사는 4등급, B운용사는 3등급 등으로 다릅니다. 특히 B운용사는 3등급을 ‘주식에 60% 이하, 파생상품에 60% 이상 투자하되 만기 보유 시 원금 보장을 추구하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 위험 2등급에 대해 ‘주식 및 파생상품에 60% 이상 투자하는 경우’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식에 60% 이하 투자하는 혼합주식형은 어떤 위험등급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 www.funddoc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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