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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똑바로 살아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5호 35면

“세계는 열 살배기.” 메릴린치가 1998년 10월 11일 미국 주요 신문에 낸 전면광고의 타이틀이다.

메릴린치는 지난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넘어갔지만, 당시엔 월가의 쟁쟁한 투자은행이었다. 내용인즉, 글로벌 경제는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탄생했으니 이제 겨우 열 살배기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축으로 하는 글로벌 경제는 앞날이 창창하다, 장래성이 있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을 거다….

다 좋은데 끄트머리의 단서가 걸린다 했더니만 정말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일찌감치 이를 예고한 메릴린치마저 당하지 않았나.

글로벌 경제의 성장통은 국제화 전도사의 호주머니도 털어갔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자신의 투자 경험을 소개했다. 98년 인터넷 은행에 투자한 그는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14.5달러에서 27달러로 뛰자 환호했다고 한다. 나, 천재인가 봐, 하며. 그러나 98년이 어떤 해였나. 아시아 외환위기가 러시아로 옮겨 붙은 해였다. 러시아가 자빠지자 프리드먼이 쥐고 있던 주식 값은 8달러로 폭락했다. 왜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로 내 주가가 곤두박질치나. 그는 해답을 국제화에서 찾았다.

똑같은 현상이 지금 방향만 바꿔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훨씬 큰 규모로. 지난해에 겪었던 일을 복기해 보자. 생각할수록 억울하지 않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미국인이 빚을 못 갚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내 펀드가 깨지고, 내 직장이 흔들리나.

바로 국제화 때문이다. 텍사스의 샘이나 뉴욕의 톰이 빚을 못 갚았다 치자. 예전에는 집을 차압해 처분하면 됐다. 텍사스나 뉴욕의 ‘동네 문제’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 대출을 담보로 증권이 발행되고, 이를 몇 차례 튀기고 굴려 새로운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세계 각지의 금융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다. 한 줄로 엮인 회로라고나 할까. 어느 한 곳이 끊기면 모든 회로가 불안해진다.

금융뿐이 아니다. 광우병, 조류 인플루엔자,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황사 할 것 없이 모두 국제화의 그물망에 들어 있다. 그래서 이젠 무엇 하나 남의 일이란 게 없다. 강 건너 불구경할 수도 없다. 나의 행동이 남에게 영향을 주고, 동시에 나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살아야 한다.

나폴레옹은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 했다고 한다. 인과응보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뜻이다. 그가 현대 금융위기를 봤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불행은 누군가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고. 나의 불행이 남의 잘못 탓에 찾아오고, 남의 불행이 내 잘못으로 닥칠 수 있는 게 국제화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미국을 향해 큰 소리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똑바로 살아라, 남에게 피해 안 주게.”

어럽쇼, 이게 금방 메아리로 돌아오네. “(너도)똑바로 살아라….” 국제화란 이런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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