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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100년의 향기’ 담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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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문단에서 논쟁은 빈번하다. “네가 말하는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이 아니다”란 식으로 용어 싸움이 시작되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서양에서 무차별로 수입한 용어들이 시대와 환경이 다른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 의미가 혼용돼 쓰이곤 해서다. 이렇게 엇갈리는 문학 용어를 통일성 있게 정리한 결과물이 나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획하고 ‘100년의 문학용어사전 편찬위원회’가 실무를 맡은『100년의 문학용어 사전』(도서출판 아시아)이다. 편찬위는 수 차례 심포지엄과 세미나를 열고 여론조사를 벌여 700여개 어휘를 뽑아 896쪽 분량에 소화했다. 이 사전으로 걸러낸 근대문학 100년의 특징을 살펴본다.

◆황석영·김지하 위에 루카치=황석영(66)씨와 김지하(68)씨를 빼놓곤 한국 근대 문학 100년을 설명할 수 없었다. 황석영(총 29회)과 김지하(총 26회)는 사전에 가장 빈번히 등장한 한국 문인이다. 황석영이 지난해 출간한 장편 『개밥바라기별』은 ‘교양 소설’, 『객지』는 ‘노동 문학’에서, 『장길산』은 ‘대하 소설’과 ‘역사 소설’에서 거론됐다.『바리데기』는 ‘민속 문학’과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사례로 쓰였다. 이 외에도 ‘분단 문학’(‘한씨 연대기’), ‘서간체 소설’(‘아우를 위하여’), 전쟁문학(『무기의 그늘』) 등에서 언급됐다. 여러 소설 양식을 두루 실험한 작가의 창작열 덕분이다.

김지하는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 서구 휴머니즘의 한계를 비판하며 주창한 ‘생명 사상’, 그 사상을 펼치기 위해 고안한 장르인 ‘대설(큰 이야기)’ 등이 실렸다. 그러나 황석영과 김지하를 누르고 최다 인용(31회)된 인물은 헝가리 출신 문학사가 게오르크 루카치(1885~1971)였다.

◆리얼리즘 빼곤 100년을 논할 수 없다=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는 ‘리얼리즘’이다. 모더니즘 등 다른 문학 사조들과 대립하는 등 20세기 내내 논쟁이 끊어지지 않았던 문제적 용어다. 사전에서는 리얼리즘을 “현실의 모사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문학 예술의 경향”이라 정의했다.

◆칙릿과 팬픽, 북한 용어까지 망라=‘칙릿(chicklit)’ ‘팬픽(fanfic)’ ‘웹 2.0’ 등 신조어도 사전에 올랐다. 사전은 백영옥의 『스타일』, 이홍의 『걸프렌즈』, 우영창의 『하늘다리』, 서유미의 『쿨하게 한 걸음』 등을 한국형 칙릿이라 소개했다. 북한의 문학 용어도 함께 다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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