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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인내심 싸움 … 추운 시절 견디니 결국 꽃 피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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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박 노리다 쪽박 찼다. 펀드 투자자들, 지난해엔 이런 탄식을 한 번쯤 다 해봤을 거다. 쑥쑥 빠지는 주가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거다. 그럼 이제 펀드 투자는 끝장인가? 시장이 존재하는 한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반 토막 난 펀드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는 ‘예스(Yes)’라고 답한다. 불황도, 침체도 결국 시간을 이기진 못하기 때문이다.

◆원조 펀드의 성공=현재 판매 중인 펀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의 ‘그로스 주식형 펀드’다. 다음주 1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말까지 이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283.36%. 그동안 한국 경제가 헤쳐온 굴곡을 생각한다면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바이코리아’로 알려진 푸르덴셜운용의 나폴레옹정통액티브 펀드는 더 극적이다. 1999년 3월 1호 펀드를 시작으로 나폴레옹·르네상스·하모니 등 10여 개 펀드가 한 달 반 만에 무려 4조원을 끌어모았다. 그해 7월 주가가 역대 두 번째로 1000포인트를 찍은 뒤 대우채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이듬해 봄 정보기술(IT) 경기가 꺼지면서 주가는 곤두박질했고, 펀드 자금도 썰물처럼 빠졌다. 바이코리아 펀드 가운데 아직도 운용되고 있는 나폴레옹 펀드의 경우 11개월 만에 83.6%라는 수익률을 올렸지만 그 후 1년간 번 돈을 모두 날렸다. 출시 한 달 만에 2000억원 넘게 들어왔던 자금도 2000년 말 56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03년에는 카드 사태가 터졌고 결국 2004년 이 펀드를 운용하던 현대투신은 공적자금을 받고 푸르덴셜 그룹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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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펀드 수익률은 슬금슬금 올라 2007년 11월 490%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다시 반 토막이 나긴 했지만 처음 설정 때부터 투자한 사람의 원금은 세 배로 불었다. 2000년부터 이 펀드 운용을 맡아온 푸르덴셜자산운용 송이진 매니저는 “특정 시점에는 참담한 성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연평균 12% 정도의 수익을 낸 셈”이라고 말했다.

◆5년 넘어야 안정=주부 전경애(52)씨. 그의 ‘한국 셀렉트 배당 주식형 펀드’ 통장엔 2270만원이 찍혀 있다. 2003년 5월 노후를 위해 1100만원을 넣어둔 것이 5년8개월 동안 두 배로 불었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원금 손실도 겪어봤다. “원금을 까먹고 있을 땐 폭탄을 맞은 것 같았어요. 내가 왜 투자했나 후회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회복하더군요.” 그는 여러 고비 끝에 연평균 18.9%의 수익을 내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그간 종잣돈을 불려준 한국 경제와 운용사의 실력을 믿는다”며 환매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주식·펀드 투자의 역사가 긴 미국에는 장기투자의 효과를 밝힌 연구가 많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겔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안전한 자산으로 꼽히는 장기채권과 상대적으로 위험한 투자로 알려져 있는 주식의 수익률을 비교했다. 과거 136년의 데이터를 모아 연간 수익률을 따져봤더니 1년간 투자할 경우 열 번 중 여섯 번꼴로 주식이 채권을 앞질렀다. 그런데 투자기간이 5년으로 길어지면 그 확률이 71%로 높아지고, 20년은 96%, 30년이 넘으면 100%로 나왔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주식이 채권보다 되레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겔 교수가 과거 200여 년의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주식은 주가가 아무리 최악인 상황에서도 20년 이상 투자하면 연평균 수익률이 물가상승률보다 적어도 1%포인트는 앞섰다. 반면 채권은 20년간 투자하고도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할 때가 많았다. 투자한 돈의 구매력이 인플레에 치여 되레 반 토막 난 경우도 있었다.

국내에서도 최근 비슷한 연구가 나왔다. 2007년을 기준으로 1년간 투자했을 때 코스피는 3년 만기 국고채보다 23% 많은 수익을 냈다. 3년 투자의 수익률 차이는 12.7%로 오히려 좁혀졌지만 5년간 투자했을 땐 다시 119%로 확 늘었다.

물론 2008년만 들여다 보면 주식 투자는 돈 까먹는 지름길처럼 보인다. 단기 투자의 경우 주가의 흐름을 잘못 타면 원금을 날릴 수도 있다. 투자자교육재단의 의뢰로 이 연구를 한 서강대 남주하(경영학) 교수는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을 5년으로 제시한다. 그는 “경기가 호황과 침체의 사이클을 한 바퀴 도는데 3~4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5년쯤 지나면 투자 수익률이 요동치는 게 줄고 안정적으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제도·관행 달라져야=최근 들어 국내에도 장기투자 문화가 점차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등공신은 적립식 펀드의 정착이다. 지난해 금융위기 과정에서 주가가 폭락하자 모두 펀드에 돈이 급격히 빠질까 걱정했다. 하지만 한 해 동안 국내 주식형 펀드는 되레 19조원 늘었다. 그래도 달라져야 할 것이 많다. 수수료 챙기기에 급급한 펀드 판매사들의 영업 관행이 그렇다. 상품 내용도 모르고 가입한 펀드에서 손해를 봤다면 투자자가 믿음을 갖고 기다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펀드 소송 사태도 이런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자산운용협회 최봉환 부회장은 “올해 자본시장 통합법이 시행되면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는 펀드만 팔아야 돼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산운용사도 펀드매니저의 잦은 교체나 유행상품 쏟아내기 등의 관행을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현철·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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