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임 사장에 취임 선물 달라는 가스공 노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엊그제 한국가스공사 노사관계의 황당한 한 단면이 드러났다. 청와대에서 열린 공기업 보고에서 주강수 가스공사 사장은 “낙하산 인사에 반발하는 노조원들 때문에 취임 후 지사 시찰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주 사장이 공개한 가스공사 노조의 행태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노조 대표들은 첫 만남에서 “관행대로 취임 선물을 달라”며 공기업 개혁 반대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원칙경영을 강조하는 신임 사장에 대해 “노사분규로 옷 벗을 각오를 하라”는 협박까지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 이런 곳이 가스공사 하나뿐이겠는가. ‘관행’이라는 노조의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른 공기업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고질적 병폐가 지금껏 덮여왔던 것은 낙하산 인사로 노조에 약점을 잡힌 경영층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눈감아 온 까닭이다. 따라서 절반의 책임은 공기업 임원 자리를 ‘전리품’처럼 여긴 역대 정권에 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러니 공기업 경영상태가 온전할 리 없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302개 공기업 가운데 30%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1인당 인건비는 전체 근로자 평균보다 무려 66%가 높은 5340만원이나 된다. 한마디로 경영은 소홀히 한 채 혈세를 지원받아 자신들의 잇속만 채운 셈이다.

올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어느 때보다 노사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리는 딴 세상에 사는 듯한 가스공사 노조의 행태에 절망감을 지울 수 없다. 어느 나라 공기업이고, 어느 나라 노조인가. 정부는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사회 기강 확립 차원에서도 가스공사 노조의 터무니없는 생떼에 대해 법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공기업 개혁은 정치권-정부-공기업 노조의 ‘부당한 공생 구조’부터 끊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공기업 선진화’라는 무늬만의 개혁에 머물러선 안 된다. 민영화·통폐합을 통한 과감한 구조조정만이 비뚤어진 공기업 행태를 바로잡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