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증언대의 정태수씨 기세등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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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일 한보 청문회의'스타'는 한보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이었다.오전9시20분 구치소 3층에 마련된 청문회장에 수의를 입고 들어선 그는 처음에는 다소 풀죽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뻔뻔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오전 청문회가 끝날 무렵쯤에는 증인인 그가 의원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까지 연출했다.거북한 대목에는“모른다”“기억이 나지 않는다”“내가 한게 아니라서”“재판중이어서 말할 수 없다”는등으로 피해가다간 특위위원의 질문을 거침없이 맞받아치기도 했다.

청문회에선 鄭씨 특유의 사고방식과 답변스타일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우선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한보를 재기시키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鄭총회장은 신한국당 이신범(李信範)의원의 질문에는 아랑곳없이“한말씀 하겠다”면서“우주는 음양으로,사회는 선악으로 돼 있는데 언론은 모든 면에서 한보의 음지만 보도하고 있다.그러나 그렇지 않다”며 한보그룹이 노인정등을 지은 사실등'공로'를 장황하게 늘어놨다.

그는 또 같은당 맹형규(孟亨奎)의원에게“대출은 누가 부탁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고 사업주와 사업성.담보물이 다 충족돼 하는 것”이라며 훈시조로 한보에 대한 대출이 정당했음을 강조했다.

鄭총회장은 국민회의 조순형(趙舜衡)의원에게도“정부가 공장부지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설비투자 대출을 해준 것이고 한보철강이 마침 그런 조건을 충족하고 있어 대출받았을 뿐”이라며 거듭 정당성을 강변했다.

鄭총회장은 앞으로 한보를 재기시키려는 강한 욕심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자민련 이인구(李麟求)의원이“아직도 한보를 재기시키려는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그건 미래 일이라 닥쳐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또“억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처해 있는 입장에서 얘기한들 뭐하나.그냥 흘러가고 있다”며 현재 처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세무공무원 출신인 鄭총회장은 '장부'에 매우 집착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인구의원이“은행대출 말고 사채가 1조2천억원이 맞느냐”고 묻자“모른다.기억안난다”고 버티다“장부에 있으면 맞는거지”라고 답했다.

趙의원이“15대 총선전 33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자“장부가 없어서 기억이 안난다”고도 했다.鄭총회장의 이날 답변에선'장부'라는 단어가 5~6차례나 거론됐다.

鄭총회장의 배짱도 볼만했다.그는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은“재판중이니 진술을 거부한다”거나“기억이 안난다”고 버텼다.한보철강에서 돈을 유용한 사실은 전혀 없고 대출도 모두 정당한 것이라고 우겼다.

趙의원에 대해선“실례지만 의원이 부탁해봐야 은행이 10억원도 대출 안해준다.

은행이 그렇게 허술한줄 아느냐”는 충고도'아끼지'않았다.

국민회의 이상수(李相洙)의원이“대선 다음날 당진제철소에 전화하지 않았느냐”고 묻자“전화한걸 어떻게 다 기억하느냐”고 코웃음치듯 받아넘겼고“숟가락 몽뎅이까지 저당잡혔는데 진실을 얘기해도 못알아 듣느냐”고 힐난조로 답변하기도 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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