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속의문화유산>9.익산미륵사지. 문수동자상.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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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문화유산이란 우리 생활의 발자취요,정신적.물질적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생활능력의 축적물이다.문화유산은 지난 생활의 발자취임에 틀림없으나 언제나 오늘의 생활에 부단히 새롭게 접근해 온다는데서 제값을 다하게 된다.그런 점에서 문화

유산에 대한 우리의 의식과 태도는 형식이나 양식에 의한 정태적 대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를 있게 한 정신적 가치가 오늘에 살아 움직이는 동태적인 모습에 접근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나는 내 마음속에 살아있고 사회 속에 그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유산으로'익산 미륵사지''상원사 문수동자상''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꼽고 싶다.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상기시키는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밝은 미래

상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원한 희망 상징

오늘의 익산 미륵사지에는 광활한 절터 폐허에 백제시대의 석탑 1기와 새로 복원된 9층석탑 1기가 동.서로 마주하고 있다.7세기에 품었던 백제인의 희망이 20세기 현대인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삼국유사'는 익산 미륵사가 창건된 내력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즉 백제 중흥을 꾀하던 무왕이 왕비와 더불어 사자사로 가던중 연못에서 출현한 미륵삼존불을 보고 못을 메워 당대의 거대한 가람 미륵사를 세웠다는 것이다.그때 미륵사에는 미

륵삼존불이 봉안되고 탑 3기를 세웠는데 그중 2기가 오늘에 전해지고 있는 셈.미륵사의 백제석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조형을 이룬다는데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손꼽히지만 그보다 거대한 유구를 자랑하는 미륵사 절터가 더 큰 뜻을 오늘의 우리

들에게 전하고 있다.

7세기의 백제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큰 절을 지어야만 했을까.그것은 미륵신앙에 희망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백제는 신라를 능가하고 싶었고 무왕은 선화공주를 취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러나

이와같은 어려움에 봉착할 때 절망하지 않는 희망이 필요하다.그것이 미륵신앙에 의한 미륵사의 창건이다.

흔히 미륵은 말법세의 중생구제를 위한 후세의 미래불로 인식되고 있다.그러나 그 미래불은 말세의 중생에게 희망을 안겨준다는데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미륵사의 창건설화가 무왕의 탄생설화와 선화공주의 영입설화,지명법사에 의한 신통력이 주된 화소(話素)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는데서 쾌감을 갖게 하지만 그것이 미륵사의 창건설화로 전하고 있다는 것은 다름아닌

미륵신앙에 의한 희망의 표상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려움에 봉착할 때 어느 한곳에라도 희망을 걸 수 없다면 절망에 빠지지만 미래의 희망이 엿보이면 보람차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그와 같은 지혜를 백제인은 일찍이 터득하고 있었다.높이 쌓아올린 석탑과 거대한 가람의

구조는 그만큼 희망이 크고 높은 것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우리의 역사는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를 잘 극복해 왔다.그것은 역사적 시련기에 항상 버팀목이 돼주었던 미륵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미륵사에 뿌리내린 미륵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미래의 희망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심사숙고하는 생활인

미륵보살은 도솔천에 있으면서 장차 사바세계에 내려가 말법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그런데 6세기 후반에서 7세기에 걸친 삼국시대에는 이같은 미륵보살상을 많이 조성하고 있다.

현존하는 미륵보살상은 대체로 오른쪽발을 무릎 위에 얹은 좌상을 취하는 한편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대고 생각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이같은 미륵보살상을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 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깊게 생각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속전속결하는 생활습성이 체질화돼 있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있는가.여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생활인의 예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다.예리한 콧날과 지그시 감은 눈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고 허술한데라곤 한곳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에서 장차 말법중생을 모두 구제하고도 남을 확고한 신뢰성을 느끼게 한다.

신선한 삶의 표본 동자상

불교경전은 불심을 표현함에 있어 많은 동자상을 드러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즉 불심은 동심과 같이 세속에 물들지 않음을 나타낸다.사람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곧 사물을 바로 보고 멀리 보는 안목을 지닌다는

데서 불교는 흔히 동자상을 표현한다.그중에도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보람차고 신선하게 해주고 있어 잊을 수 없다.

쌍궤머리에 복스러운 얼굴이 천진성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점도 관심을 끌게 하지만 티없이 맑은 동자상이 권력욕에 눈이 어두웠던 세조의 정신적 갈등을 말끔히 해소시킬 수 있었다는 연기설화는 더욱 우리의 마음에 다가옴을 느낀다.

문화유산은 단지 흘러간 옛것이 아니다.오늘의 우리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와야 한다.오늘 사회는 거칠고 신뢰성이 떨어지며 가위 절망적인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문화유산은 이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를 얻을 수 있고 새 희망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거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미륵사에서 희망을,반가사유상에서 자비를,문수동자상에서 지혜를 얻어보기 바란다. 홍윤식〈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

<사진설명> 미륵보살반가사유상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생활인의 예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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