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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韓美의 '위대한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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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는 요즘 위대한 세대(great generation)에 대한 존경과 찬사가 넘쳐난다. 위대한 세대는 1910~20년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엔 참혹한 대공황의 경제위기를 거쳤고, 그 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4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이 붕괴할 때까지, 인류 역사상 냉전이라고 불리는 한 시대도 묵묵히 버텨냈다.

한국전과 베트남전이라는 두 번의 전쟁이 스쳐갔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사임하는 것도 이 세대는 목격했다. 60~70년대의 반전과 히피문화도 겪었다. 하지만 이 세대는 동시에 희망과 번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군사.과학기술의 측면에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배경과 원동력엔 이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다.

31일은 2차대전 참전용사들을 위한 미국의 현충일, 즉 메모리얼 데이다. 87년 미 의회는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2차대전 참전용사 기념물 등을 재정비하기 위해 1억750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 공사는 17년 만에 끝났고, 지난달 29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참전 용사와 가족 등 12만명이 워싱턴에 집결했다. 일부는 60년 전에 입었던 낡은 제복을 입었고, 일부는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에 의존해 손자.손녀를 데리고 워싱턴을 찾았다. 미 언론은 앞다퉈 "조국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이들을 존경해야 하는가"라며 위대한 세대를 잔뜩 치켜세웠다.

한국에도 위대한 세대는 있다. 1920~30년대에 태어나 일제의 잔혹한 식민지 지배에서 살아남았고, 50년엔 총을 들고 조국을 지켰다. 기성세대가 된 60년대부터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4.19와 5.16의 격동기를 거쳤으며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신군부의 쿠데타, 광주 민주화운동과 그 이후의 모든 정치적 격변도 목격해왔다. 이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이 위대한 세대는 찬사는커녕 종종 무시와 모멸의 대상이 되었다. 곧 현충일과 6.25가 돌아온다. 이들에게 드려야 할 감사와 존경을 우리는 너무 오래 잊고 살아왔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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