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 예비 여대생 “일어 전문번역가 될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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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학구파 조성희(76·서울 중계동·사진) 씨는 지난달 13일 치러진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고령 응시자였다. 손자뻘 되는 학생들 사이에서 시험을 봤다.

시험을 치른 지 한 달쯤 지나 기쁜 소식이 잇따라 날아들었다. 올해 3~4개 대학 입시에서 당당하게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행복한 고민 끝에 인덕대 일본어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대학에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집에서 그나마 가깝고 중고등학교 동기가 같이 가자고 하기에 그 학교로 정했지.”

조씨의 들뜬 목소리는 여느 대학 새내기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오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조씨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만 마쳤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중 1 때 해방을 맞이하면서 미리 와 있던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뒤 배움의 길이 끊겼다. 6·25 전쟁이 나면서 부산까지 피란 갔다가 다시 서울에 정착했지만 결혼을 하고 2남1녀를 키우면서 학교는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공부 욕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네 복지관에서 일본어 수업 등을 듣던 이씨는 우연히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주부들의 학교인 일성여자중·고교에 대해 듣고 중학교 과정부터 밟기 시작했다. 2005년 즈음이었다.

“자식들은 공부를 시작한다니까 그리 좋아하진 않았어요. 뭐하러 고생하느냐고.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요. 그래도 하루를 살아도 보람있게 살고 싶잖아. 그래서 시작했어요.”

물론, 뒤늦은 공부는 쉽지 않았다. 기억력이 가장 큰 문제였다. 뭘 배워도 잘 잊었다. 매주 20시간 넘게 수업을 듣는 것도 힘들었지만 조씨는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영어 공부할 때는 과거 미8군 PX에서 일했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결국, 4년만에 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쳤다.

“결국 의지만 있으면 돼요.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든 하게 되거든. 저처럼 뒤늦게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도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

조씨는 23일에도 서울 염리동에 있는 일성여중·고에 갔다. 대학에는 합격했지만 배움 자체가 즐겁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진을 찍으러 가겠다고 하자 “공부에 방해가 된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가 입학할 인덕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조씨에게 별도 방을 줄지 등 대우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하자 조씨는 되물었다. “신입생 환영회? 가야지. 근데 뭐하러 나한테 다른 대우를 하려고 해.”

조씨의 다음 꿈은 일본어 전문번역가다.

“일본어는 초등학교에서 6년간 배워서 괜찮거든. 더 열심히 배워서 사회에서도 써먹어야지요.”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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