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기업민영화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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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을 통해 제시한 공기업 민영화방안은 겉치레로 민영화 형식을 취하면서 정부의 개입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다.한마디로 정부가 생각하는 것은 공유-민영화방안이다.이는 민유-민영화가 진정한 민영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정쩡한 해법이다.

과연 이런 민영화로 기대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이번 방안은 이미 정부가 민간에 입찰이나 주식매각을 통해 주인을 찾아주는 길을 포기한 뒤에 나왔다는 점에서 일종의 전시행정적인 냄새를 풍긴다.한보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정부지분이

없는데도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인사와 경영에 간섭하는 은행의 예를 보면 정부지분을 유지하는 공기업의 경영이 얼마나 효율화될지는 불문가지다.

KDI안은 소유권에 대해서는 지배주주를 허용하지 않되 사장의 선임방법이나 사외이사및 외부감사의 기능을 강화해 정부가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인다는 것이다.이는 특정재벌에 한국통신.한국중공업.담배인삼공사및 가스공사와 같은

거대 공기업을 맡길 수 없다는 이른바'국민정서'와 그래도 경영효율화를 하는 시늉은 해야겠다는 요구가 합쳐진 일종의 검증안된 실험적 방안이다.과연 정부가 최대주주이면서 주인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이같은 방안이 말 그대로 실천에 옮겨질

수 있겠는가.또 상임이 아닌 사외이사들이 얼마나 공기업의 경영에 책임을 느끼고 참여할 것이며,평소 기업경영의 세세한 부분을 모른채 사내경영진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아무리 공기업의 경영을 위해 유능한 인력을 외부에서 영입한다지만 결국 정부의 입김이 잘 먹히는 인사가 뽑혀 공기업의 진정한 민영화가 지연되리란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진정한 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기업의 사업영역 자체를 경쟁체제로 바꾸고 규모가 큰 공기업은 분할해서라도 시장에서 주인이 찾아지게 유도하는 것이다.당장은 특정 대기업에 매각이 불가능하다면 정부가 제정하려는 공기업특별법에 최소한 시간표를 만들어 책임있는 경영주체의 가능성을 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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