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담보채권’2000억 회수 속앓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국내 증권사들이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와의 금융거래 과정에서 맡긴 담보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악의 경우 2000억원대에 이르는 담보 가운데 30~40%를 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문제의 담보는 증권사들이 파생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하면서 제공한 것이다. 파생상품의 특성상 손실과 이익은 거래가 종료되는 시점에야 결정된다. 그 때문에 대금 결제도 대개 나중에 한다. 대신 대금 지급을 보장하기 위해 증권예탁결제원에 증권사들이 채권을 담보로 맡기게 된다. 거래가 끝나면 주고받을 돈을 정산한 뒤 담보 채권을 찾아오는 구조다. 예탁원 측은 이렇게 맡긴 담보채권의 정확한 규모는 고객 비밀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선 약 2000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9월 리먼이 파산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증권사와 리먼 측이 맺은 계약서에 따르면 한쪽이 파산하면 거래는 자동적으로 종결된다. 또 파산한 쪽은 담보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항도 계약서에 포함돼 있다. 증권사들은 이 조항에 따라 예탁원에 담보 채권의 반환을 요구했다. 파산하고 나면 나중에 동의서 받기가 어려워 사전에 계약서에 처리 절차를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탁원의 입장은 다르다. 규정상 리먼의 동의가 있어야만 담보를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예탁원은 담보를 맡아주기만 할 뿐이며 거래당사자들이 맺은 계약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파산한 리먼의 홍콩법인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파생상품 담당자는 “파산관재인이 임명됐지만 이들이 책임질 일을 할 이유가 없다”며 “결국 홍콩법원이 재판을 통해 채권·채무 관계를 확정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리먼 홍콩법인의 채권·채무 관계는 15만 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상태다.

일부 채권은 만기가 곧 돌아온다. 원칙적으로 담보 채권은 만기가 돼 현금으로 상환되면 담보권자 소유가 된다. 일단 리먼 계좌로 들어가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파산한 리먼의 계좌로 넘어가면 리먼 전체 채권의 우선순위에 따라 돈을 받아야 하므로 국내 증권사가 이를 찾아올 가능성은 작은 편이다.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담보를 찾아올 때 줄 돈보다 담보로 맡긴 채권의 가치가 30~40%가량 크기 때문에 채권을 찾지 못하면 600억~800억원가량을 떼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예탁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리먼이 이 돈을 찾아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예탁원과 증권사 담당자들은 지난주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예탁원 규정이 국제 관행을 쫓아가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금융위원회나 재경부가 유권해석을 내려주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최현철 기자

◆주가연계증권(ELS)=종목이나 지수가 어느 정도까지 떨어져도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파생상품. 몇 년 새 안전한 투자 상품으로 알려져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 주가가 많이 떨어지는 바람에 큰 손실이 났다.

[J-HOT]

▶ "2045년 인간이 영원히 사는 시대 열린다"

▶ 미군 '차세대 공격형 무인 비행기' 공개

▶ '세계 10대 엔진' 현대차 '타우' 뜯어보니

▶ '성폭행 혐의' 이재원 고소했던 그녀, 갑자기 무죄 주장

▶ 뉴스위크 편집인 "日서 인기 있는건 모두 한국거라더라"

▶ 적나라한 정사신 화제… "더 이상 보여드릴게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