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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년기획 해외석학 릴레이 기고

①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과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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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학자들은 어떤 현상의 기저에 작용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는 뛰어나지만 언제 그런 현상이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데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 하지만 거품 붕괴 이후의 사태는 예상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 경제는 내년 한 해 동안 여전히 하강 국면에 머무를 것이며 전 세계는 그 결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미국의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세수가 줄어듦에 따라 지출을 극도로 줄이고 있다. 미국의 수출은 감소할 것이다. 소비지출은 예상대로 추락일로다. 주택과 주식 가격의 하락으로 미국인의 부(富)는 수조 달러나 쪼그라들었다. 미국인들은 가치가 과대 평가된 주택을 담보로 수입을 훨씬 능가하는 과소비적 삶을 영위해 왔다. 그런 게임은 이제 끝났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미국은 조만간 이런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경제는 과다 차입에 의해 지나치게 부풀려져 왔다. 그 결과 과대평가된 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직면해 있다. 과도한 차입이 무분별한 대출 및 위험천만한 파생상품과 결합한 결과 신용시장은 얼어붙었다. 무엇보다 은행이 자신들의 대차대조표조차 알지 못하는 마당에 다른 회사의 장부를 믿을 리 만무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문제가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했고, 문제 발생 땐 이를 부정했으며, 그 다음엔 그 심각성을 축소하다 결국은 공포에 휩싸여 우왕좌왕했다. 탈규제를 옹호하고 은행의 과도한 차입경영을 허용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중 한 사람인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수습을 지휘하면서 미 정부는 수시로 정책을 바꾸는 일을 반복했다. 한 정책을 확신에 가득 차 밀어붙이다가도 이를 갑자기 폐기하고 다른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 수두룩했다.

미 정부가 취한 몇몇 조치는 금융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미국이 직면한 여러 위기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하층 서민의 재산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거시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소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지출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세계는 20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중대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당시 농업 부문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농업 분야의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현재 제조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은 한 세기 전 농업 부문보다 훨씬 더 두드러진다. 사회가 적응해야 할 일이 그만큼 더 크고 많다는 뜻이다.

우리가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극심한 불균형이 초래하는 무질서의 위험이다. 세계 경제의 권력 구조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세계를 구하는 데 필요한 유동자금의 돈줄은 서방이 아닌 아시아와 중동에 있다. 그러나 국제 기구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는 우리가 점점 상호 의존적이 돼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최대의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이 깊고 긴 경기침체는 당연히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탈동조화 현상’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이 경기침체뿐만 아니라 탈규제 철학과 독소적인 주택담보대출까지 수출하는 바람에 유럽과 다른 곳 금융기관들이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많은 개도국이 금융자본의 유입과 수출 증대, 원자재 가격 폭등의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완전히 거꾸로 바뀌었다. 역설적이게도 개도국에 유입되던 돈이 지금은 거기서 빠져나와 세계적 문제의 근원인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전 세계가 직면한 이런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과 세계 지도자들이 모든 일을 제대로 한다 해도 미국과 세계 경제는 오랫동안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또 경기침체가 얼마나 오래갈 것이냐는 것 못지않게 경제가 살아났을 때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인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

과연 세계 경제는 강력한 성장 체제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1990년대 일본처럼 무기력한 회복에 그칠 것인가. 현재로서 나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진다. 막대한 국가채무의 유산 탓에 경제회생에 필요한 대규모 부양책에 대한 열의가 꺾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가 넘을 정도로 충분히 큰 규모의 경기부양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악순환의 덫에 빠질 것이다. 경기침체로 기업의 도산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주가 하락과 이자율 상승을 불러오며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리고 은행을 부실화시킬 것이다. 그러면 소비와 투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막대한 현금을 지원받은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결손을 줄이는 전통적인 경영 방식으로 복귀하고 있다. 결손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점이다. 교육·기술·인프라처럼 생산성이 높은 부문에 투자하는 데 돈이 투입된다면 국가의 대차대조표를 건전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경제 상황이 어떻게 돼 가는지 보고 나서 돈이 필요할 것 같으면 그때 가서 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줄이 막혀 이미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을 나중에 돈을 대준다 해서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그 피해는 오래간다.

오바마가 월스트리트보다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 대담한 조치를 취한다면 2009년 말부터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미국과 세계 경제의 단기적 전망은 매우 암울하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

◆조셉 스티글리츠(65)는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냈으며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로, 예일·스탠퍼드·프린스턴을 거쳐 현재 컬럼비아대 교수로 있다.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