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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국방비 45% 지출 대체세력 아직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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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2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8년간을 압축하는 키워드는 ‘테러와의 전쟁’이다. 전 세계는 대(對)테러 전쟁을 통해 미국이 수십 년간 장악해 온 군사패권의 수준을 가늠했다. 전쟁비용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만 이라크 전쟁에 4500억 달러, 아프가니스탄전에 1200억 달러를 썼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두 개의 전쟁에 지난해 말까지 총 4조9500억 달러의 직·간접 비용을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하드파워<1>군사력

인명 피해도 컸다. 2001년부터 올 6월까지 아프간에서는 330명이 전사했고 2153명이 다쳤다. 이라크에서는 사망자 3345명, 부상자 3만1343명에 이른다. 심리적 비용도 빼놓을 수 없다. 외교 전문지(誌) ‘포린 폴리시’가 현역·퇴역 장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0% 이상이 “미 군사력이 5년 전에 비해 약화됐다”고 했다. 과연 미국의 군사력은 약화됐을까.

스톡홀롬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가 펴낸 2008년 연감을 보자. 미 국방비는 5470억 달러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비를 합친 액수의 45%를 차지했다. 영국·중국 등 상위권 국가들도 개별적으로는 전 세계 총액 대비 5%를 넘지 못한다. 냉전 시절 미국과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였던 러시아도 3%에 불과하다.

전쟁 억지력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핵무기 능력도 월등하다. 핵탄두만 3575개를 보유하고 있다. 냉전 시절 핵탄두를 많이 비축한 러시아(3113여 개)를 제외하면 프랑스 348개, 영국 185개, 중국 151개 순이다. 항공모함과 정보·첩보위성 등 고도의 기술과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분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갖고 있지 않은 첩보위성을 30여 개나 갖고 있다.

핵폭발 감지 센서도 24대나 된다. 세계 10대 군수업체 중 6개가 미국 회사이고 전 세계 무기시장 점유율도 50%를 넘는다.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서 전략적 세(勢) 불리기에도 열중한다. 전통 거점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확대하는 게 두드러진다. 내년 4월께 알바니아·크로아티아를 신규 가입시킬 예정이고 그루지야·우크라이나도 후보로 거론된다. 이란발(發) 미사일 공격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폴란드에 미사일 요격기지, 체코에 레이더 기지 건설을 각각 추진 중이다.

이에 반발해 러시아는 폴란드 접경 지역인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東進)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중앙아시아 등과 상하이협력기구(SCO)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해 9월 태평양에서 미국과 기뢰 탐색 및 소해(掃海), 불법 선박 검거 등 해상 합동훈련을 하는 등 긴장 속에서도 최소한의 미·러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아태 지역에서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있다. 미·일·호주 간 삼각동맹을 강화하는 것도 중국 대륙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패권을 대체하는 세력으로 주목받는 중국의 도전도 거세다. 중국은 30여 년간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있다.

공개된 국방예산만 연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군 현대화가 핵심 사업이다. 미 국방부가 발간한 올해 중국 국방력 평가 보고서는 중국의 외국산 무기 구입 및 연구개발 비용 등을 포함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 예산은 발표 금액보다 최대 20배까지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정부는 국방비 세부 항목·금액을 공개하지 않아 서방 국가들이 투명성을 문제 삼고 있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주과학 기술의 활용 목적에 대한 중국의 애매모호한 태도다. 중국은 7개의 위성을 해양 감시용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대만해협에서 무력충돌 사태가 발생하면 아태 지역 미군의 움직임을 조기에 파악하려는 군사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비밀리에 시도한 위성요격(ASAT) 실험도 세계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됐다. 애슐리 텔리스 카네기재단 연구원은 “요격된 기상위성의 이동 속도가 초속 7.42㎞였는데 이는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속도와 같았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우주과학 실험이 아니라 군사 실험이라는 시각이다.

중국의 사이버전쟁 능력은 미국·독일·프랑스 등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해 이들 국가의 주요 기관에서 적발된 해킹 사건은 대부분 중국을 발원지로 하기 때문이다. 스파이 활동이나 인터넷 해킹 등을 통한 군사기술 확보 작전도 계속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00년 이후 6년 동안 400건 이상의 군사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됐다”고 보고했다.

중국 군사문제 전문가인 김태호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선진 군사기술을 전력화하는 데 상당한 제약과 문제를 안고 있다”며 “가급적 미국에 직접적인 도전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군사력을 강화시키려 한다”고 분석했다.

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025년께 미국의 군사패권은 공고하며 대체할 세력이 없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 미국의 군사력 약화를 지적하지만 전 세계에서 군사력을 전개하는 역량은 여전히 미국이 최고라는 것이다. 향후 에너지 안보가 중요시되는 점도 미국이 군사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에너지를 안전하게 옮길 해양 수송로를 확보하려면 미 군사력의 도움을 받아야 돼 에너지 수입 대국들은 대미 군사 의존도를 줄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NIC 보고서는 향후 20년간 사이버전쟁, 우주전쟁, 에너지·자원 확보 등 비군사적 전쟁 방식이 더 확산되고, 이 분야에서 미국이 단연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신흥국가들의 경쟁·갈등 국면이 두드러질 경우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로서 미국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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