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5년의 미래를 제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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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망한 대선주자중 한 사람인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 대표는 지난 11일 있은 한양대 초청 강연회 자리에서“개혁의 완성을 위해 신한국당에 입당했으며 좋지 않은 방법인줄 알지만 당론에 따르는 당인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법 날치기에

참여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그러자 이에 대해 한 학생이“변명을 하기보다 21세기 한국의 미래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말해 李대표가 머쓱한 표정을 짓더라는 보도가 있었다.

학생의 지적이 너무도 직설적이어서 예의는 충분히 갖추지 못했을는지는 모르나 지적한 내용이나 방향만은 다른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이다.우선 노동법 날치기는 당론과 당인의 논리만으로 충분히 변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노동법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所信 있어야 할 大選走者

따라서 적어도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노동법이나 안기부법과 같은 문제에는 충분한 지식과 자기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어야 마땅하다.그래서 찬성이면 찬성,반대면 반대의 주장을 분명히 했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줄줄이 꼭두새벽에

소환돼 앉았다 섰다 했다니 듣기에도 민망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다른 신한국당 대선주자들이야 그렇고 그렇다치더라도'대쪽'이란 이미지 때문에 작지 않은 기대를 모아왔던 이회창씨마저 그랬다니 아쉬움도 컸던 것이다.하기는 어디 여당 대선주자들 뿐이었던가.논리가 정연하기로 정평이 있는 DJ도

노동계와 기업측 양쪽 눈치를 보느라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으니 결국 정치권 전체에 실망,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엽적이고 전문적인 법률안들이었다면 또 모르겠다.그러나 노동법과 안기부법 같은 법이라면 사회의 가장 기본적.근본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이념이 결부되고,더 나아가선 정권의 성격도 결정되는 법이 아니던가.그런 성격의 법에 관해서도 뚜렷

한 소신이 없고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면 과연 대통령이란 막중한 자리를 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국민들은 현정권의 참담한 실패에서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그것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최소한 자신이 맡을'5년간의 미래'에 관해서만이라도

확실한 비전과 설계를 지니고 있어

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토록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출발했던 현정권의 말로가

이처럼 참담하게 된 근본원인은 무엇인가.그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렬한 개인적 야망은 있었으되 대통령이 되고 난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뚜렷한 이념적 설계와

정책의 청사진이 없었던 것이 그 주요 원인이 아닐까.

안타까운 것은 대선주자들의 언동과 거동을 보면 교훈을 얻은 쪽은 일반

국민들 뿐이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선주자들은 거의가 YS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요즘 정치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세력간 합종연횡의

양상을 보면 정말로 가관이다.엇비슷하기라도 해야 봐주지,이건 물과 불이

합치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겠다는 식이다.하기는 3당합당이란 당시로선

정말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정치적 책략으로 권력을 창출했던 전례가

있으니 어떤 합종연횡

인들 이상하다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정권마저도 지난날의 3당합당식 야합에 의해 창출된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이 나라,이 사회가 탐욕스런 정치인들이

개인적 야망을 실현하는 무대라는 말인가.

野合의 정치는 포기해야

현정권의 결말이 이 지경,이 꼴이 된 첫째 이유가 이념적 빈곤,정책적

빈곤이라면 두번째 이유는 그 태생적 한계에 있다.합당을 한 3당은 과연

어떤 뿌리를 가진 정당들이었던가.그런 정당들과 야합해 권력을 얻었으면

차라리 수구(守舊)

에나 안주할 일이지 거꾸로 개혁을 추구하려 했으니 그것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정한 이치였다.

아무쪼록 대선주자들은 먼저 자신의 정치적 색깔과 소신을 뚜렷이 하고

그를 바탕으로 동지와 국민의 지지를 모았으면 한다.야합의 정치는

이제까지로 족하다.21세기 한국의 미래에 관해 자신의 꿈을 펼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합종연횡의 야합에 골몰하는 시간을 미래의 청사진을 만드는데 돌려야 한다. 유승삼 (출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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