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워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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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영국 런던의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 사이에는 지하 관광명소가 하나 있다. 1940년대 초반 보수당 출신 윈스턴 처칠 총리가 만든 전쟁상황실이다. 땅 밑 깊숙히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면 좁고 답답한 회의실이 나온다. 이곳에 들어서면 좌석배치가 우선 눈길을 끈다. 처칠의 바로 옆자리에는 노동당 당수인 클레먼트 애틀리가 앉았다. 처칠은 전쟁이 터지자 최대 정적인 애틀리를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끌어들였다. 회의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면 곧바로 최고 작전명령이 됐다.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야당이 반발하면 애틀리가 의사당으로 달려가 소속 의원들을 진정시켰다. 처칠은 회의 때마다 통계부 직원을 불러 생생한 전황도 공개했다. 영국군의 연전연패 소식은 오히려 영국인을 단결시켰다. 처칠과 애틀리는 손을 맞잡고 민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63년 쿠바사태 당시 미군 전쟁상황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을 경유해 보고받던 관행을 완전히 무시했다. 하루 종일 워룸에 앉아 미 군함의 위치까지 일일이 챙겼다. 막판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 잠수함과 대치한 구축함장을 호출해 직접 무력사용 자제를 명령했다. 케네디와 맥나마라는 고위 장성들이 은근히 전쟁을 원하는 낌새를 눈치채고 직접 상황을 장악했다. 결국 쿠바위기는 전쟁을 비켜갔다. 그렇다고 케네디가 시시콜콜 간섭한 건 아니다. 그는 중요 회의 때는 슬쩍 워룸 바깥으로 나갔다. 자신 때문에 작전 참모들이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부담을 느낄까 봐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정부가 ‘청와대 서별관회의(거시경제정책협의회)’를 ‘워룸(국가종합상황실)’으로 격상시킨다는 소식이다. 경제 수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원스톱으로 경제위기 극복대책을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모범적이었던 처칠과 케네디의 워룸과 비교하면 뭔가 허전하다. 대통령 혼자 바쁘지 실무를 장악하는 한국판 맥나마라는 안 보인다. 어제 청와대를 다녀온 한나라당 대표는 “지금 문제는 속도다.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이고(…) 온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기 좀 거북하다. 이런 메시지가 자꾸 흘러나오면 곤란하다. 지금은 민심 결집이 전쟁의 분수령이다. 처칠처럼 워룸의 대통령 옆자리에 맨 먼저 초청할 인물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아닐까.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