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회수한 돈으로 직원 복지비 등에 '펑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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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00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기관에서 헐값에 사들인 부실기업 채권을 비싼 값에 되팔아 3558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캠코는 공적자금 회수액으로 회계처리해야 할 이 돈을 회사의 이익잉여금으로 잡고 이 중 상당액을 조직 확대와 직원 복리후생비 등에 썼다.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 관리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감사원이 재정경제부.캠코.예금보험공사와 공적자금 수혈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200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지원된 공적자금 26조7000억원의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이들 기관과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와 부당한 관리로 더 회수할 수 있었던 공적자금 8231억원이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 돈 중에 예보의 관리 소홀로 파악되지 않은 부실 금융기관 책임자들의 은닉 재산 등 회수 근거가 분명한 1700억여원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에 강력한 회수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머지 6500억여원은 회수 근거가 없어 사실상 거둬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도덕적 해이=캠코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157만원이었던 직원 1인당 평균 임금을 2002년 5500만원으로 75% 이상 올렸다. 또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서울보증보험 등 6개 금융기관은 2002년 임원 임금을 평균 80%나 인상했다. 또 대한투자증권 등 8개 금융기관은 2000년 이후 임직원들에게 학자금.개인연금 등 1416억원을 무상 지원했다. 이처럼 부실 금융기관들이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복리후생비 등으로 사용한 돈이 2320억원에 이른다.

캠코가 파산회사의 재산 회수를 위해 내보낸 직원들이 경매 대금 8억여원을 횡령한 사실도 적발됐다.

감사원 실사 결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초래한 책임자들이 1273억원의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당한 관리=캠코는 99년 부실채권 7724억원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보증 채권 356억원어치를 무보증 채권으로 분류하고 헐값에 매각해 272억원의 손실을 봤다.

대한주택보증이 지급을 보증한 99억원어치의 채권은 미국 투자회사 M사에 단돈 100원에 넘겼다. 이 회사는 공짜로 받은 이 채권을 고가에 팔아 90억원 가까운 이익을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부실채권을 매각하기 위해서는 자산유동화회사(SPC)를 설립해야 하는데도 캠코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를 설립했다. 뒤늦게 실수를 발견하고 SPC를 다시 설립했지만 이미 무용지물이 된 CRC 설립 자금과 이중 부담케 된 관리 수수료 등으로 공적자금 74억원을 낭비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캠코.예보 입장=캠코 측은 공적자금을 자사 잇속 챙기기에 이용했다는 지적에 대해 "부실채권 매각 이익이 많아진 것은 경제 상황이 호전되고 채권 회수 노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익금을 추후 부실채권정리기금에 편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공적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캠코는 또 "SPC를 설립하지 않고 CRC를 설립한 것은 부실채권 발행 기업들을 구조조정한 뒤 채권을 더욱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예보 관계자는 부실기업의 채무를 지나치게 탕감해 주었다는 지적 등에 대해 "당시 국제 기준과 급박한 금융시장 현실을 고려해 취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밝혔다.

임봉수.정경민.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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