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노동법 협상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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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 노동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휘청거리던 우리경제를 더욱 멍들게 만들고 사회 전체를 국론분열로 몰고갔던 뒤끝이다.

10일 열린 신한국당 의총에서 이재오(李在五)의원은“새벽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킨 뒤 지역구민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며 자괴감을 토로했다.의총에 참석했던 여당의원들은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그저'빨리 잊고싶은'사건으로 치부해버려선 안될 것같다.고통을 통해 얻은 교훈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지난해말의 날치기 법안과 10일의 여야 합의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교훈은 쉽게 드러난다.

지난해 12월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뒤 신한국당에선“후련하다”고 말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그동안 야당에 사사건건 시달리고 몰렸던걸 열거하며“이렇게 고통당하느니 차라리 잘됐다”는 말도 많았다.

이번의 재개정 노동법도 과정은 비슷했다.처음부터 여야는 맞섰고 고성이 오갔다.밤을 꼬박 새워가며 토론도 했고 성과없이 회의가 무산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못해먹겠다”고 불평하는 여야 의원들이 부지기수였다.그러나 이번엔 반드시 합

의안을 내야한다는 대명제가 있었다.여야는 그때문에 어려운 협상을 계속했다.

무엇이 옳은길인지는 결과에서 승부가 났다.골치아픈 여야토론과 대화를 생략했던 여당의 단독통과는 사회를 온통 혼란과 대립으로 몰아넣었다.

경제는 추락했고 외국언론들은 은근히 이를 즐기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물론 여야 의원들이 열심히 싸워가며 만들어낸 이번 합의안도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했다.그러나 적어도 파국은 벗어났다.

1차 노동법과 2차 노동법의 국회통과 과정이 주는 교훈은 분명해 보인다.정치권이,특히 힘을 가진 여당이 대화를 무시한채 한쪽으로 밀어붙일때 사회의 갈등은 폭발했다.그러나 어렵고 짜증스러워도 갈등이 국회안으로 수렴됐을 때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

효율성을 앞세우는 군사문화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잊혀졌던'정치의 존재이유'를 일깨워준 이번 교훈을 잊지말길 바란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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