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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몰락 석 달, 반등 기대 앞서 반성부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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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26면

석 달이 지났지만 ‘생사의 갈림길’은 여전하다. 주가 얘기다.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몰락했다. 그 뒤론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었다. 주가는 천(天·1000)이 무너졌고, 환율이 치솟았으며, 실직 공포가 꿈틀댔다. 6개월치 비상 현금을 준비하라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경고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12일 뉴욕 증시. 자동차 ‘빅3’ 구제법이 상원에서 거부됐다는 대형 악재에도 주가는 올랐다. 백악관이 구원투수였다. 이미 책정해 놓은 구제금융 일부를 투입하는 비상책을 쓸 수 있다고 나섰다.

조마조마했던 한국 투자자들에겐 희소식이다. 요즘 미국 주말장은 당장 월요일 열릴 한국 증시의 잣대로 통한다. 다우지수는 최근 한 달간 착실하게 체력을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오바마 차기 대통령이 재무장관을 임명하고 그의 경기부양책에 기대가 실리며 주가를 받쳤다.

하지만 주식값이 뛰면 악재는 곧 잊혀진다. 생물학적으로 투자자들은 이익이 되는 것만 바라보는 ‘도마뱀의 뇌’를 가졌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최근 “아이스하키 퍽이 머물렀던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머물 곳에 미리 진을 치라”며 저점 매수를 주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살얼음판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빅3 자동차 회사들의 명줄이 위태롭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좀 더 길게 보자. 석 달 전 1만1400선이었던 다우지수는 지금 8600선으로 30% 넘게 떨어졌다. 리먼 이후의 공포와 상처가 아물려면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최근 모습에 홀려 다시 주가 랠리의 꿈을 갖기엔 섣부르다. 미국에선 이달 실업자가 6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속출한다. 운전이 필수인 미국인의 1년간 주행거리가 최근 유가가 떨어졌음에도 총 1000억 마일 줄었다는 소식은 한파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해외 고수들은 어떤 눈을 가졌는지 둘러 보니 마침 금융위기를 누차 경고해 왔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포춘 최신호에 글을 썼다. ‘우리는 심각한 위기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돌아갈 수 없고 바닥도 없다. 미국만의 위기가 아니다. 모든 선진국이 하드랜딩에 들어갔다. 2010년부터 경제가 회복해도 1% 정도 성장에 그칠 것이다. 집값은 고점에서 25% 떨어졌지만 15% 더 떨어질 것이다. 희망적 얘기를 하고 싶지만 1년 전에도 내 말이 맞았다.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요즘 반등세에 찬물을 끼얹는 얘기지만 상승 이면의 그림자를 보면 ‘원래 비관론자’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반등’을 고찰하기 전에 함께 ‘반성’이며 ‘수습’부터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한국만 해도 은행을 놓고 대통령은 대출을 해주라고 하는데, 금융 당국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라고 하니 시장 참가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은행장을 지낸 한 금융계 인사를 만났더니 “가장 안전한 자산에 투자해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라는 모순된 얘기를 하는 운용사 사장이 제일 한심하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고 말했다. 미국의 빅3 자동차 구제법안을 놓고도 상원 공화당 의원과 노조 간에 ‘네 탓’ 공방전이 한창이다. 리먼 부도로부터 석 달, 거품의 후유증은 아직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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