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핵폐기물의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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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만이 핵폐기물의 북한수출을 강행하면 그것은 한 나라의 핵폐기물이 국경을 넘는'세계 최초'를 기록하게 된다.그리고 공교롭게도 국민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일,위험물질을 안전하게 다루는 일,국제적인 약속을 지키는 일 등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나라가 달러를 받고 죽음의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불명예를 자청하고 나섰다.

대만에서 핵폐기물처리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 있는 대만정부 고위관리들을 만나 대만이 국제적인 이미지손상을 무릅쓰고 핵폐기물수출을 강행할 생각인지,한국에 남아 있는 저지수단은 무엇인지를 타진해 보았다.

어떤 관리의 말에서는 대만정부의 갈등과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겉으로는 핵폐기물수출은 북한이 원해서 추진되는 상거래(商去來)고 핵폐기물의 안전성이 검증됐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국제적으로 전례없는 부도덕한 일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기

세가 꺾인다는 인상을 받았다.또 어떤 관리는 한국이 대만의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대만의 논리는 사상누각(砂上樓閣)같은 것이다.대만은 핵폐기물의 안전처리에 문제가 없다는 북한의 말을 믿는다고 말한다.대만은 북한의 약속을 믿는 몇 안되는 나라의 대열에 들고 싶은 모양이다.

대만은 또 핵폐기물 자체가 저준위(低準位)여서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한다.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렇게 안전한 것이라면 어째서 국내에서 처리하지 않고 러시아.중국.마셜군도같이 달러에 굶주린 나라들을 유혹하다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빈사(

瀕死)직전의 북한에 착안했느냐는 단 한마디의 반론에도 견디어 내지 못한다.국토가 좁으니 어쩌냐고도 한다.땅덩어리가 좁은 것이 문제라면 원전(原電)을 모조리 해체하는게 도리다.

핵쓰레기수출이 상업적인 거래라는 주장은 처음부터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대만정부 원자력위원회의'저(低)방사선 핵폐기물의 국외처리에 관한 업무지침'제6항은 이렇게 적고 있다.'방사능 핵폐기물의 국외처리는 국제규범위반은 아니지만 전례

없는 일이어서 국제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국외합작처리는 국제정치.외교관계와 국제사회 찬동 등의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앞으로 대만 전력공사가 국외처리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할 때는 외교.경제.교통부와 원자력위원회 등 기관에

자문한 후 정책적 차원에서 정부가 결정한다.'최종적인 책임은 대만정부에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핵폐기물 수입으로 대만과의 경제협력관계가 확대되기를 바란다.북한이 대만에 제안한 경제협력은 15건에 26억달러다.그러나 대만.북한관계에 밝은 고위관리는 대만과 북한의 경제협력은 경제논리만 가지고 결정할 수는 없고 한국.미국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돈은 다른데서도 벌 수 있다”는 그의 말이 핵폐기물문제와 무관하게 들리지 않았다.

한국에 기발한 방책은 없다.감정대응을 피해야 한다.핵폐기물수출을 강행하면 국제무대에서 대만 고립에 앞장서겠다는 협박같은 것도 당치 않은 허세(虛勢)다.

중국은 자신이 대만 핵폐기물을 수입하려고 했던 전과(前科) 때문에 반대하는데 한계가 있다.미국이 대만에 성의있는 압력을 가할 것인지도 의심스럽다.국제원자력위원회도 기술적인 자문만 한다.

열쇠는 대만정부와 북한이 쥐고 있다.안전점검에 걸리는 오랜 시간을 활용하면 대만이 공식적으로 포기선언을 하지 않고 문제를 증발시킬 수 있다.그래서 끈기있는 정부간 대화가 필요하다.두나라 관계 복원(復元)의 틀 안에서 문제해결을 찾

아야 한다.

그래도 안되면 남북한과 미국의 3자대화체널을 통해 북한을 회유하는 길밖에 없다.북한은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50년,1백년후 죽음의 물질로 변할지 모르는 핵쓰레기의 한반도 반입을 막는 것이 지상명령이라면 그 방법도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 영 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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