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것이급하다>上. 절실한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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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동법파업에 한보사태까지 겹쳐 한국경제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형국이다.이처럼 경제가 기우는데 언제까지고 한보 충격에 휩싸여 있을 수는 없다.내각경제팀의 교체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새 경제팀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상.중.하로 나누어 정리해본다. [편집자註]

문민정부 4년동안 경제부총리만 여섯명째.그간의 평균수명이 9개월에

불과했다.

정책의 일관성 따위는 논할 겨를조차 없었다.업무를 채 파악도 하기전에 바꿔치기를 되풀이해 온 것이다.잦은 장관교체 속에 모든 경제부처들이 1년내내 인사이동으로 지새웠다.

정책은 뒷전이고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만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과거

어느 정권때도 이같은 혼란은 없었다.

'신경제'로 시작해'10% 경쟁력 높이기'까지 갖가지 구호를 늘어놓았지만

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정부의 생산성은 10%향상은 고사하고 마이너스행진을 거듭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경제의 위기는 단순한 고비용.저효율의 문제가 아니다.축(軸)이

돼야할 정부 자신의 혼란상태가 더 심각한 문제다.난국을 헤쳐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커녕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장본인이 바로 정부라는

비판까지 나온다.껍데기만 있을

뿐 행정은 공백이다.경제에 관한한 사실상'무정부상태'라 해도 할말이

없게 되어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이 시행도 못하고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판이다.

권위도,체통도 상실했다.

이런 정부 아래서 한국경제가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것만 해도 다행이랄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정부역할을 해줘야 한다.그 첫째가 상실한 리더십의 회복이다.난국에 처할수록 정부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독재시대의 리더십이 아니라,위기경제를 종합적으로 추스리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선봉역할이 있어야 한다.

남은 1년이라도 대통령부터 경제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경제현실의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

노동문제가 아무리 질곡을 헤맨다 해도 최고통치자가 심각한 문제인식

아래 직접 나선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클린턴 미 대통령은 프로야구파업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고,카스트로

쿠바국가평의회 의장은 지금도 데모현장에서 군중들과의 1대1토론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리더가 믿음직하고,정부가 든든하면 한결

낫다.거꾸로 리더십이 없는 정부는 그것 자체가 가장 심각한

사회불안요인이다.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구심점이 아니라,촉발하는

장본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다가올 선거열풍으로부터 경제를 차단.보호하는 일부터가

시급하다.가뜩이나 휘청대는 경제가 더 이상 정치논리에 흔들리면 정말

큰일이다.

이것 역시 대통령의 결연한 결심,확고한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문지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내가 몰라도 전문가에게

믿고,맡기고,밀어주면 된다.지금까지는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유능한 경제장관이라 해도 대통령이 의심하고 흔들면

하루아침에'바보장관'이 되기 십상이었다.

9개월만에 목이 달아나는 장관을 믿고따를 만큼 관료들이 어리석지는

않다.

고통없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활로는 없다.경제상황은 그만큼 심각하다.

정부.기업.소비자 할 것없이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서는 무엇하나 해결될 일이 없다.고통의 교통정리,이것 역시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된

경제정책으로 해결해야할 몫이다.

지금의 고통을 왜 참고 분담해야 하는지를 설득하고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

경제정책은 하나를 택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는'선택'이다.고통과

부작용이 불가피하다.최선의 선택을 찾는답시고 걸핏하면 사람

갈아치우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보다 차선(次善)의 선택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이

것 또한 확고한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리더십이 단순한 추진력을 의미하진 않는다.리더의 자기희생과

솔선수범,그리고 올바른 방향제시가 전제되어야 힘 실린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부문부터 자기희생 감수를 실천해 보여야 다른 경제주체들도 비로소 따라간다.

정부 자신은 쓸것 다 쓰면서 기업이나 가계에 내핍과 절약을 호소한들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정권말기의'레임덕'현상 속에 새삼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욕심일 수 있다.그러나 지금의 경제상황은 달리 묘수가 없다.

불황과 구조조정이라는 2중고를 헤쳐나오기 위해서 리더십의 확립은

필수불가결의 요건이다. 이장규 〈경제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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