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읽는다] 오늘의 중국에서 ‘내일’의 한국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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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중국에서 올제의 한국을 본다-이중의 중국산책 』
이중 지음, 375p, 15,000원, 지식산업사

두 편의 한시(漢詩)가 있다.

세상에 못해 낼 일 없노라 世上無難事,
마음먹고 오르려고만 한다면 只要肯登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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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 산의 정상에 올라서서 會當凌絶頂
산 아래 작은 산들을 내려다보리라 一覽衆山小

위의 시는 마오쩌둥이 1965년에 지은 ‘정강산에 다시 올라(重上井岡山)’라는 시다.
아래는 두보의 ‘태산을 바라보며(望嶽)’에 나오는 구절로 후진타오가 워싱턴을 방문해 조지 부시앞에서 읊은 시다.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두 내용을 담고 있다.
앞의 시는 공산혁명과 개혁ㆍ개방을 거치며 쉴틈 없이 달려온 중국의 의지를, 뒤의 시는 머지 않은 미래에 전세계를 호령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욕을 보여준다.

이중 전 숭실대 총장이 2006년부터 교수신문에 연재한 ‘이중의 중국산책’이 책으로 묶여 출판됐다.
중국 근현대의 역사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비롯한 공산당 혁명 1세대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실렸다.
비사가 많아서일까 첫 장을 들추면 마지막 장까지 쉽게 넘어간다.

저자는 중국을 ‘전적으로 모를 나라’면서 ‘몰라서도 안 되는 나라’라고 말한다.
이미 100년 전에 중화문명권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리가 이제 다시 초등학교부터 천자문을 외우고, 논어를 익히고, 두보와 이백의 시를 공부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된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우리가 선택한 길이다. 우리 겨레의 안정적 삶과 번영을 위해서는 중국과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과 투쟁, 경쟁으로 점철된 중국의 과거 100년을 살펴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살 길이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기이한 복이 까닭 없이 굴러온 듯 奇福無端至,

아직은 수명부도 받지 않았는데 無胎受命符.

야랑이 천하에 자신만이 제일인가 하듯 夜郞能自大,

제국의 국호에 그네들만 웃음짓네 帝號若爲娛.

제왕의 칙서 문서 하늘에 알리고 誓廟絲綸誥,

이웃에 구슬 비단 주고 받았네 交隣玉帛圖.

임금님의 만세 소리 높이 부르며 千秋萬歲壽,

조선은 독립했다 환호성 높네 朝鮮正歡虞.

청말의 사상가 양계초가 고종의 황제 등극을 소재로 지은 시다.
조선의 임금이 중국 황제로부터 수명부를 받지도 않은 채 멋대로 황제로 일컬었다고 비아냥대는 시다.
지금부터 111년 전 중국 최고의 지성은 한국을 이렇게 바라봤다.
중국의 굴기가 현실로 펼쳐진 지금 한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속내는 양계초의 그것과 같을까 다를까.

한국의 역대 지도자들에 실망한 탓일까.
저자의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일본 학자의 말을 빌긴 했지만 마오쩌둥을 공자와 진시황을 합한 인물로 그렸다.
‘제왕과 스승을 겸비(軍師合一)하고, 덕과 업을 한데 구현(德業俱全)한’ 사람이 바로 마오란다.
저자의 앞선 책은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인민출판사에서 이미 출판됐다. 저자는 말한다.
“마오쩌둥이 산이라면, 저우언라이는 물이고, 덩샤오핑은 길이다. 산은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p.131)

이 책에는 중국 공산당 관련 비사가 많다.
중국 현대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사건은 마오와 장제스(蔣介石)를 항일전쟁으로 묶어낸 시안(西安)사변이다.
죽을뻔한 마오는 살았고, 장제스는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격이 됐다.
시안사변은 동북군의 영수 장쉐량(張學良)의 병간(兵諫)이다.
그러나 장쉐량 뒤에 가오위안푸(高源福)가 있었고, 그 뒤에 ‘모략대사’ 마오쩌둥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융(張戎)의 저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마오’를 인용한 것이다.
게다가 장제스의 심복으로 알려진 후중난(胡宗南)도 공산당의 잠복 간첩이었다고 주장한다.
마오쩌둥을 ‘모략대사’로 그리기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지만 이는 정황증거에 기반한 추측에 불구하다.
비사(秘史)가 아니다. 야사(野史)다.

“중국에서는 다른 데서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2005년 중국을 방문해 한 말이다.
중국 사람들은 속내를 들킨듯 시라크의 이 말에 환호했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중국식 전술의 핵심은 바로 지공(遲攻), 지구전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거대한 중국호의 진로를 '시간 늦추기 전략'으로 제대로 챙기고 있다며 저자는 중국의 시간 관념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중국의 시계는 느리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마오가 63년1월에 지은 시에는 '시간과의 경쟁'이라는 只爭朝夕이란 구절이 나온다.
쑨원은 삼민주의를 내세우며 한 칼에 유럽을 따라잡자 외쳤고, 마오쩌둥의 조급함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참극을 불러왔다.
중국을 공과 과 한 쪽에서만 보면 필요 이상의 미화론이나 경계론에 빠지기 쉽다.
저자가 적고 있지 않던가 ‘부드럽고 강한 것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중정(中正)의 길’이라고…

이중 전총장은 시인이다.
책 곳곳에 한시가 묻어 난다.
한국과 관련된 시 몇 편을 빼면 모두 역대 중국 지도자들이 짓거나 애송한 것들이다.
외워두고 중국인들에게 써먹으면 좋을 시구를 접하게 된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수확이다.

연재를 마친 저자가 교수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앞길을 말한다. 마치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떨칠 수 있는 마음가짐 같다.

“길은 뻔한데, 참으로 어렵네요. …… 공통된 반성의 토대 위에서 이제 새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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