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물질 善用하는 마음의 조종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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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느 대형 신발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좀 특이한 파업을 했다.파업기간 내내 일을 하긴 하는데 왼쪽 신발만 계속 만들고 있다가 파업이 끝나자 오른쪽 신발을 만들어 노동자도,사용자도 다 같이 승리했다는 이야기다.

연초부터 노동법.안기부법 파동에 이어 한보사건.외채급증 등 연속적인 대형 사건이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이런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져 노사.여야.남북간 모두 성공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하겠다.

무릇 세상의 모든 물질.권력과 기술은 다 우리 마음에 따라 은혜가 되기도 하고 해독이 되기도 한다.'잘 쓰면 고마운 불,잘못 쓰면 무서운 불'이라는 불조심 표어와'조심하면 고마운 길,방심하면 위험한 길'이라는 안전 표어와 같이 불

은 그 자체 불일 뿐이고,길은 다 길일 뿐인데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고마운 불.고마운 길이 되기도 하고,무서운 불.무서운 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결국 모든 권리.재주.환경은 오직 사용하는 사람이 용심법(用心法:마음 잘 쓰는

법)으로 마음의 조종사가 될 때 천만 물질이 선용(善用)되는 것이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대종사는“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돈이나 지식이 많으면 그것이 도리어 죄악을 짓게 하는 근본이 되나니,마음이 바른 뒤에야 돈.지식.권리가 다 영원한 복으로 화(化)한다”고 했다.이제는 우리 모두가 여유를 찾

고 생활의 벗을 찾고 마음을 찾아야 할 때다.옛날 선비들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수신(修身)하는 법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배웠다.수신은 곧 마음을 바르게 갖는 법이다.

용심법은 마음의 원리를 알아 마음을 잘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선입견.주의.주장 등 분별성과 주착심을 놓고 시비이해(是非利害)를 진리에 맞게,공정하면서도 자타(自他)간 이익되게 참된 마음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마음은 지극히 미묘해서 놓으면 없어지고 잡으면 있어지기 때문에 우선 각자의 마음을 판단없이 지켜보기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런 경계가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용심법 공부가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아니므로 각자의 내면을 밝혀주는 스승을 모시는 마음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특히 우리나라 지도층들은 매순간 자기를 다스릴줄 알고 사려깊게 생각하며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국가의 백년

대계를 생각하는 심법(心法)을 익혀야 한다.

어느 대기업 회장이 노조지도자를 강경하게 법적으로 제재하느냐,마느냐 고민하다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운명공동체라는 가족의 심정으로 하라는 말씀을 듣고 여유있게 처리해 원만한 해결을 본 적이 있다.이러한 심

법을 쓰면 회사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지역사회.국가적인 일에도 반드시 함께 좋아질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 본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餘裕)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餘進),생각을 깊이 하게 되면(深思)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나며(遠慮),함께 성공할 수 있는 도덕과 철학으로 음덕(陰德)을 베풀면 반드시 국민과 하늘의 도

움을 받게 된다(陰助)”고 했다.지금과 같은 시기엔 여유와 깊은 생각,음덕의 마음을 쓸 줄 아는 각계 각층의 지도자가 요청되고 있다.

새로운 21세기는 문화와 종교의 시대라 한다.정보화시대를 넘어 정신적 가치와 효용을 우선시하는 시대라는 얘기다.우리 모두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외형적인 삶의 조건보다 이제는 자기의 마음을 먼저 개선해 나가는데 초점을

둬야 하리라.

남녀노소.선악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 효용가치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마음의 보물'을 개발하고,모든 물질과 권리.명예.기술을 선용하는 마음의 조종사가 많이 나와야겠다.“맑고 밝고 훈훈한 사회,살맛나는 나라

”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藏山 黃直平 원불교 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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