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학들 "아시아 학생 모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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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리쓰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학의 도서관 내 자료연구실에서 아시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 컴퓨터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일본 규슈(九州) 오이타(大分)현 벳푸(別府)시에는 아시아 학생들이 오롯이 모여 있는 대학이 하나 있다. '리쓰메이칸(立命館) 아시아.태평양대학(APU)'. 이름조차 아시아와 태평양을 내세우고 있다. 아시아 학생들을 위한 대학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일 점심시간 이 대학의 학생 식당은 마치 아시아 인종 전시관을 연상시켰다. 학생마다 생김새와 복장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계 여학생도 눈에 띄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곳곳에서 들렸다. 한 태국 학생이 킥복싱 행사를 알리는 홍보물을 돌리고 다녔다.

이마무라 마사하루(今村正治) 입시.학생 담당 차장은 "지금이 태국 주간이기 때문에 태국 학생들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학생.교수 절반이 아시아인=대학 학부생 3939명 가운데 41%가 72개국에서 온 외국학생이다. 외국학생의 87%는 아시아 24개국 출신이다. 대학원생(123명)은 아시아 출신(90명)을 포함한 111명(90%)이 외국인이다. 교수 117명의 48%도 외국인이다. 올해 스리랑카 출신의 몽테 카심 교수가 총장이 된 것도 이렇듯 막강한 외국인 파워 덕분이다.

APU는 간사이(關西)지역의 명문 사립대인 리쓰메이칸대학이 모태다. 2000년 오이타현.벳푸시의 도움을 받아 개교했다. 이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설립 당시부터 정원의 절반을 아시아 중심 외국 학생으로 선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점이다.

하야시 겐타로(林堅太郞)부총장은 "일본이 아시아의 최고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시아 사람들과 협력해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들을 키우자는 것이 학교 설립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서울.상하이(上海).타이베이(臺北).자카르타 등 네곳에 지부를 두고 학생을 모집 중이다. 세계의 150개 대학과 연구기관, 300여개의 고교와도 협정을 맺고 있다.

APU의 모든 교육은 영어와 일어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한국.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스페인어 등 6개 언어 중 하나를 제2외국어로 택해야 한다. 아시아 학생들은 대체로 강의에 만족했다. 2학년생인 중국의 장저(張喆)는 "다른 아시아 국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같은 2학년생인 스리랑카의 아치니 다르마샤도 "여기서 사귄 외국친구들이 졸업 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외국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의 국제화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마구치 겐이치(浜口健一.4학년)는 "국제적인 감각이 생겼다"며 "노무라 증권 입사가 결정됐는데,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한국인 문경후(文景厚.4학년)씨는 "920명이 모여 살고 있는 기숙사 생활은 외국 친구들의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지원 업고 유학생 받는 대학 급증=APU처럼 아시아화를 지향하는 대학들이 일본에서 급격히 늘고 있다.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시에 있는 하기국제대학은 올해 일본 대학으로는 처음 골프학과를 개설했다. 한국의 골프전문고교와 손잡고 학생들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른 아시아 국가 내 일본어 학원과 연계해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일본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 유치에 열심인 것은 ▶일본 정부가 꾸준하게 추진해온 '일본 알리기 정책'에 부응할 수 있고 ▶핵가족화로 부족해진 입학정원을 채울 수 있으며 ▶정부로부터 일정액의 '외국유학생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의 선진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싶다는 아시아권 학생들의 열망이 맞물리면서 1983년 1만여명에 불과했던 일본 내 외국학생 수는 지난해 말 8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문부과학성 관계자는 "부적격 학생까지 무조건 받아들여 문제가 생겼다"며 앞으로 양적 팽창에서 질적 향상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정책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실제 일부 대학들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유학생만 모집해 놓고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일부 중국 유학생들이 불법 취업에 나섰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벳푸=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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