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 장애인이 중증 장애인 손발 역할-새누리집회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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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몸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눕히시고 팔에 힘을 주세요.” 16일 오후2시 서울강동구암사동 '새누리집' 주차장. 민호성(閔浩成.43.천호1동)씨와 李기형(47.명일동)씨가 3년전 뺑소니 교통사고후 휠체어신세를 지고 있는 1급 장애인 이근섭(李根燮.46.명일동)씨와 뇌성마비 허훈(許勳.45.천호2동)씨를 각각의 승용차에 나눠 태우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이들을 도와주는 閔씨와 李씨 역시 각각 어렸을 적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심하게 절고 산업재해로 오른다리를 잃은 장애인들. 閔씨등의 임무는 목욕을 마치고 5년만에 초등학교 동창회 나들이를 나서는 이근섭씨와 이발소에 가는 許씨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주는 일.閔씨는 잠시후 이들이 안전벨트를 제대로 맸는지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이들은 강동구 재가장애인 협회(회장 尹道興)가 자체 예산을 절약해 가며 3년째 소리없이 벌여오고 있는'장애인의,장애인에 의한,장애인을 위한'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인'새누리집'회원들. 회원들은 운전이 가능한 지체장애등급 3급이하 장애인들로 가족의 도움없이는 집밖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재가(在家)중증 장애인들을 무료로 원하는 곳까지 바래다 주는'사랑의 운반자'역할을 하고 있다.

새누리집이 시각장애인.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수송편의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95년3월부터.협회측이 강동구 내에만 무려 2천14명이나 되는 장애인이 대중교통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 단 3명이 기름값 정도만 받고 시작한 교통 자원봉사는 소문이 퍼지면서 자원 장애인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해 만 2년이 지난 지금 23대의 자동차가 강동구 내에 항상 대기하고 있을 정도가 됐다.지금까지 이들의 덕택으로 바깥 바람을 쐰 장애인은 줄잡아 4백여명.야간에도 자원봉사 장애인이 1명씩 늘 대기하고 있는데다 볼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있다.

새누리집 근처에서 편의점을 경영하는 김영순(金英順.42)씨는 “몸 성한 사람들도 꺼리는 일을 장애인들이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 가족 정경호(鄭景鎬.23.K대 3년)군은“새누리집 회원들 덕분에 왼쪽 다리가 없는 아버지가 가족들의 도움없이도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다니게 돼 집안분위기가 밝아졌다”며“자신들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는 회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온다”고 고마워했다.

협회측은 구청으로부터 올해 1천95만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돼 강동구는 물론 송파구.강남구.광진구.중랑구등 서울시내 전지역을 3개권역으로 나눠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이상복 기자〉

<사진설명>

'새누리집' 회원 민호성씨등이 승용차로 이근섭씨의 동창회 나들이를

도와준 뒤 차에서 내린 이씨를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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