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진짜 끝난 게 아닌가 했는데 다시 자신감이 붙는군요.하도 내리막길이라 그냥 서있기도 힘들었습니다.이판에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 관철동 한국기원 종로지원의 꼭대기에 있는.서봉수도장'.이곳에서 만난 서봉수9단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제5회 진로배에서 중국과 일본의 대표선수들을 차례로 꺾고 8연승이란 불멸의 기록을 세운 것은 벌써 사흘전.산전수전 다 겪고 온갖 대회 우승도 다해본 徐9단이지만 이번만은 하도 감격적이라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93년 應씨배 우승 이후 계속 슬럼프였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바둑은 모든 게 실력이다.굳이 변명한다면 체력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자꾸 지면서 자신감도 조금씩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徐9단은 70년 프로가 돼 야생의 거친 감각과 독특한 실전바둑으로 바둑계를 주도해왔다.천재 조훈현에게 밀려 번번이 변방으로 쫓겨났으나 반드시 폭풍처럼 되살아나곤 했으므로 초창기엔 .야생의 표범'.누루하치'.몽고족'등으로 불렸고 나 중엔 .야전사령관'.잡초류'등의 별명이 따라다녔다.그런 그가 93년 應씨배 우승이후 너무 오랫동안 순한 양처럼 조용해지자 “서봉수는끝났다”는 소리가 공공연히 떠돌게 됐다.본인도 .이젠 진짜 끝났나 보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 -갑자기 연전연승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로배는 1시간바둑이라 체력이 부족한 기사에게 유리하다.나도 3시간까지는 견딜 만하다.그 점이 원인이 아닐까.” -그게전부는 아닐텐데. “…좀 낯뜨거운 얘기지만 실망하면서도 꾸준히 공부한 게 효과를 본 것같다.기전은 많으니까 언젠가 기회가 있을 거라고 기대를 품고 살았다.운도 좋았다.이번 여덟판중 네판은 역전승이고 반집승도 세판이나 된다.…정신적 안정도 큰 도움이 됐다.” 문하생지도를 겸해 95년 문을 연 8평짜리.서봉수도장'의 제자는겨우 1,2명.썰렁하게 혼자 지낼 때가 많지만 젊어서 못한 공부를 많이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가정의 안정과 함께 정신적방황에서 벗어나 자기관리를 충실하게 한 것 도 큰 도움이었다.이런 것들이 순기능으로 잠복해 있다가 페이스를 되찾는 순간 폭발적인 힘으로 분출하게 됐다는 얘기다. -마지막 주자인 마샤오춘(馬曉春)9단마저 꺾을 수 있겠는지. “지금같으면 자신이 있다.중국기사들에겐 승률이 90%가 넘는다.”徐9단은 현재까지 馬9단에게 3승1패를 거두고 있다.徐9단이 馬9단마저 꺾는다면 저 막강한 한국의 3강(조훈현9단.유창혁9단.이창호9단)은 이번 대회에서 바둑돌을 만져 보지도 못하고 만다.徐9단은 지금까지 연승보너스와 대국료등으로 1억1천만원가량 챙겼지만 우승을 결정짓는 막판에서 승리하면 2천만원 이상 추가된다.“기록을 세웠다고 해서 바둑계의 판도가 바뀌는 건 아니다.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 한 게 무엇보다 기쁠따름이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잡초류의 대가 서봉수로서도이번의 부활만은 감격적이었는지 얼굴에 홍조가 가득했다. 〈박치문 전문위원〉
<인터뷰>진로배 국제바둑 8연승 대기록 서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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