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옮겨다니는 천막극장 그 속엔 아이들 학교도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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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10면

어릴 때 시골 장터에서 유랑극단이 천막을 쳐 놓고 연극을 상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출연 배우들이 분장한 채 무대 뒤 바깥으로 나와 비빔국수로 요기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천막극장이 주는 느낌은 그래서 남다르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부리나케 짐을 싸 어디론가 떠날 것이고, 그 자리엔 휑뎅그렁한 공터만 남을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의 무대이야기

하지만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주차장 자리에 자리 잡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빅톱 시어터’는 말이 천막극장이지 음향·조명·객석·로비·화장실 등 설비 면에서 실내 공연장 못지않다. VIP석(300석) 티켓 소지자를 위해 공연 직전과 중간 휴식 때 와인과 스낵을 제공하는 ‘타피루즈’도 별도의 텐트에 마련했다. 공연 중인 ‘알레그리아’의 음악을 라운지 음악으로 편곡해 틀어 준다. 와인 빛깔의 은은한 조명과 탁 트인 느낌 때문에 유명 기업의 신상품 론칭 파티 장소로도 인기다.

서커스는 길거리 공연이나 전용극장이 아닌 다음에야 텐트에서 공연해야 한다. 기존 극장에서는 소화할 수 없다. 무대 바닥에서 천장까지 상당한 높이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지금도 세계 18개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쿄 디즈니랜드, 마카오에 있는 전용극장을 제외하면 모두가 ‘빅톱(또는 그랑 샤피토)’으로 불리는 텐트극장에서 공연한다. 10월 15일 ‘알레그리아’(예매 1588-7890) 개막에 맞춰 설치된 잠실 극장은 12월 27일 폐막하는 즉시 해체돼 트럭 50대분의 컨테이너에 실려 떠난다.

‘알레그리아’를 공연하는 2500석짜리 텐트극장을 지으려면 5만4860㎡의 부지가 필요하다. 런던에서는 도심에 널찍한 땅이 없어 실내 육상경기장으로도 사용되는 로열 앨버트홀에서 공연했다. 우선 텐트 주변에 1.2~1.5m 길이의 쇠막대기 500개를 박아 텐트를 고정한다. 텐트의 최대 높이는 19m. 높이 24m짜리 기둥 네 개로 천막을 지탱한다. 무대와 객석이 있는 텐트의 직경은 51m다.

극장뿐 아니라 백스테이지(출연자 대기실)·창고·사무실·식당·학교·발전소·타피루즈·매표소·목공소 등 부대시설이 필요하다. 자녀를 동반하고 세계 순회공연 중인 아티스트를 위해 교사 2명, 학생 9명짜리 ‘미니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나라마다 현지 전기 사정이 다르고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출연자와 스태프용 식당은 100석 규모로 하루 300인분의 식사를 제공한다. 27일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칠면조 요리가 나왔다. 2회 공연이 있는 날에는 오후 공연의 분장을 지우지 않은 채 식사하는 배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개막 공연은 식당에서 시작된다. 출연진과 스태프가 모두 식당에 모여 방문 도시의 전통 음식으로 제법 성대한 만찬을 즐기면서 건배를 외친다. 그런 다음 천막 위에 술을 부으면서 성공을 기원한다.

텐트극장에서는 온도와 습도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너무 건조하면 손이 미끄러지고 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다치기 쉽기 때문이다. 공연팀에는 물리치료사가 대기 중이다. 태양의 서커스 본사에서는 2만여 배우의 신체조건·건강상태를 기록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갑작스러운 부상에 대비한다. 용모나 신체조건이 비슷한 대타를 투입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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