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주국방 부담할 능력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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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주한미군 감축이 가시화됨에 따라 이제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책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 어려운 경제사정 등을 감안할 때 이런 현실이 좀더 나중에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다. 당장 걱정은 자주국방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주한미군 감축은 '발등의 불'로 떨어졌으나, 이에 대비한 우리의 전력 보완은 10년 정도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돈과 시간과의 싸움'을 동시에 벌여야 할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우리가 미국의 지원 없이 어느 정도의 전력을 갖추기 위해선 2010년까지 모두 55조원이 필요하다. 국내총생산의 2.8%인 현 국방비를 3.5%로 인상해야 한다. 그만큼 국민의 부담이 커지게 된 것이다. 특히 예산 증액에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정치지형상 이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 이런 우리의 다급한 상황은 아랑곳없이 정치권 일부에서 국방비 감축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적 동의는커녕 국론분열만 초래할 우려도 있다.

'자주'는 공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이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새 정권 관계자들은 제대로 알았는지 묻고 싶다. 경제의 뒷받침 없이 말로만 떠드는 '자주'는 레토릭이며 정치선전에 불과하다. 지난해 '10년에 걸친 자주국방'을 선언했으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니 하는 추상적 말잔치만 무성할 뿐이다. 말만 내세운 자주국방으로 자주가 되겠는가.

안보장관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 재조정은 미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추진 중이며 정부가 대비책을 강구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라"고 말했다. 정부는 무슨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 손실된 전력을 보완할 것인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 또 그런 재원을 위해서 국민은 세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하고 다른 부문은 얼마나 희생돼야 하는지도 밝혀야 한다. 경제는 점점 나빠지는데 이런 부담은 누가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