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칼럼>프로의식 철저한 프로농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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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야구.축구에 이어 농구가 프로화됨으로써 한국도 이제 본격적인프로스포츠 시대를 맞게 됐다.농구의 프로화는 늘 신장의 열세 때문에 올림픽이나 세계무대에서 받았던 서러움을 상기시켜준다.
신장의 핸디캡은 1936년 8월8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총회에서 신장차등제를 채택함으로써 일단 해결의실마리는 찾은 것으로 치부됐다.일본농구의 산파역이었으며 당시 일본체육협회 이사로 있던 이상백씨가 제안한 이 신장차등제는 190㎝를 경계로 하는 2개그룹으로의 분할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은 FIBA의 결정을 크게 환영하고 1940년도쿄에서 열릴 제12회 올림픽부터 실행한다는 확인까지 받았었다.이때 FIBA 총회 의장은 훗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을 지낸 미국의 브런디지였다.그러나 일본군국주의의 중국침략과제2차세계대전 발발로 올림픽이 두차례나 유산된데다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탓인지 농구의 신장차등제는 흐지부지 사문화돼 버렸다.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농구는 올림픽 출전이 그 한계였으며 언제나 하위리그의 단골멤버였다.따라서 신장차등제는 한국농구의 비원이 서려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농구의 프로화는 이 차등제에 대한 미련의 포기이며 새로운 활로의 모색이라는 명제를 안게 된다..영원한 승부,뜨거운 감동'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월부터 한국농구가 프로화의 길로 새 출발하는 것이다.이 거창한 시도는 한편으로 많 은 가능성과당위를,또 한편으로는 불안과 위험을 동시에 잉태한채 이미 닻을올린 상태다.지금 세계는 미국 프로농구(NBA)의 역동적인 플레이와 그 압도적인 파괴력앞에 매료되고 있다.한국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본바닥 농구와 한국 프로농구의 출범이 어떤 함수관계를갖느냐다.우리 프로농구가 NBA의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놓는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NBA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연구,그리고 파격까지도 서슴지 않 았던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미국에서 스카우트해온.선수'들이 절대금주.절대금연은 물론 저녁 간식인 과일까지 사양했다는 얘기는 우리 농구계의 온실적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이들의 몸가짐에서 우리는 서릿발같은 프로세계의 논리와 철저한 자아의 식을 배우게된다.이들“미국선수”들의 기량과 체력으로 미루어 국내선수가 들러리로 전락한 일부 아시아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스포츠의 프로화시대를 맞아 철저한 프로의식의 접목은 승패에 앞서 강조돼야 할 가장 중요한 덕 목의 하나다.그 풍토로 미뤄 농구에 관한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KOC위원.전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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