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불황 땐 눈높이 낮춰라 … 광고 ‘럭셔리’를 벗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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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2. 아내의 생일을 잊어 눈치만 보는 남편과 요란한 설거지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아내. “싸늘한 집안 분위기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는 카피가 마무리(지난달 전파를 타기 시작한 같은 회사 광고).


새 광고 속의 배경은 30평형대 주택이다. 부엌은 고만고만한 크기로 거실에 붙어 있다. 대형 평수 집을 배경으로 한 2년 전 광고와 사뭇 다른 배경이다. 광고 제작진은 사실감을 살리려고 경기도의 한 주택에서 촬영을 했다. 광고를 기획한 TBWA 김백수 차장은 “종전에는 품격과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해 고객에게 기대감을 심어줬다면, 새 광고는 ‘내 얘기 같다’는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눈앞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광고도 변모하고 있다. 수년간 ‘럭셔리’와 ‘고품격’으로 치장했던 기업 광고들이 평범하고 친숙한 이미지 쌓기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유제상 웰콤 부사장은 “요즘처럼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특별한 사람들이 누리는 것’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보다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는 광고 전략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9월 방영을 시작한 삼성 디지털 카메라 블루의 광고는 ‘아기 방귀’를 소재로 했다. 엉덩이에 분을 바르던 아기가 방귀를 뀌자 아빠 얼굴에 분가루가 날린다. 이 순간을 이 회사 카메라 제품의 동영상 기능으로 포착했다는 설정. 스포츠카를 몰고 바닷가에 간 남녀가 서로의 모습을 찍어대며 데이트하거나 미남 배우 장동건이 레드카펫 위에서 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 촬영한다는 지난해 스토리보다 스케일이 아담해졌다. 광고를 제작한 하쿠호도제일 관계자는 “멋지게 꾸민 배우나 화려한 비주얼로 시선을 끌던 형식에서 벗어나 실제 겪었을 법한 생활 속 이야기로 고객에게 친근감을 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올봄까지 신한카드 광고에는 스포츠카가 등장했다. 스포츠카를 타고 해변을 달리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서빙을 받는 식사를 하며, 애인에게 보석을 선물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내용이었다. 하지만 9월부터는 대자리를 깔고 누운 모녀, 오랜만에 외식하는 가족, 목욕하며 책 읽어주는 부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신한카드의 여동근 부부장은 “상품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면만을 부각하다 보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고객들이 거북함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최고 가치로 여겨온 아파트 광고에도 변화 조짐이 엿보인다. 전형적인 아파트 광고에는 긴 드레스를 입은 톱스타 여배우와 사방이 통유리로 돼 있는 모델하우스 같은 거실이 단골로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 삼성 래미안의 ‘집은 엄마다’ ‘집은 아빠다’ 광고를 보면 안락한 일반 가정을 자주 그린다.

기업 이미지 광고도 서민 눈높이에 맞췄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미국의 현대 예술가 앤디 워홀과 그의 작품을 통해 혁신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달 선보인 새 광고는 임신부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꿋꿋하게 직장생활을 해내는 모습을 그렸다. 만삭의 몸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도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예비 워킹맘의 이미지를 실감나게 보여줬다. 웰콤 유제상 부사장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여성상을 소재로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희망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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