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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몽골‘파스파 문자’영향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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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몽고자운』에 나오는 ‘파스파 문자’의 모습.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에 소장된 이 책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인돼 나왔다.

“훈민정음과 한글에 대한 국수주의적인 연구들은 이 문자의 제정과 그 원리·동기에 대해 진상을 호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국어학자 정광(68) 고려대 명예교수는 훈민정음의 ‘독창성’에 대해 국내 학계의 주류와는 다른 견해를 펼친다. 훈민정음이 창제 과정에 있어서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참조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파스파 문자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이 라마승인 파스파(八思巴)에게 명해 만들어 1269년에 반포한 문자다. 한자의 발음과 몽골어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로서 ‘몽고신자(蒙古新字)’로도 불린다. 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고려뿐 아니라 조선 초기의 지식인들은 이 파스파 문자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췄다고 한다.

정 교수는 “훈민정음(1443년 창제)은 174년 앞서 만들어진 파스파 문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18일~19일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하는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국제 학술 워크숍’에서다.

정 교수에 따르면 파스파 문자는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수단이며 ▶중국의 전통적인 자모(字母) 36자를 기본으로 만들어졌고 ▶모음의 개념을 담은 유모자(喩母字) 7개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훈민정음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훈민정음이 당시 한국어 음운을 분석해 자음과 모음을 추출하고 여기에 문자를 하나하나 대응시켜 만든 것으로 잘못 이해해 왔다는 것이 정 교수의 입장이다. 언어학에서 음운 분석은 19세기에나 비로소 제기된 방법이다. 이를 560여 년 전에 인식했다는 것은 ‘현대적 편견’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초성에 해당하는 중국 자모의 36자를 파스파 문자는 중복음을 제외해 31자로 줄였고, 우리는 동국정운 23자와 훈민정음 17자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체계는 원나라 말기에 편찬된 『몽고자운(蒙古字韻)』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를 근거로 훈민정음은 처음엔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서 창제됐다고 본다. 그러나 이 발음기호로서의 유용성 때문에 창제 직후 고유어 표기에도 활발하게 쓰였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소위 ‘파스파 문자 기원설’은 해외 학계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학계에선 ‘파스파 문자’ 자체에 대한 해독 능력이 떨어지고, 해외 학계에선 한글에 대한 오해 등이 겹쳐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해외 학계에선 훈민정음이 글자 모양 자체도 파스파 문자를 교묘하게 변형시켜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정 교수는 “발음기관을 상형해 만든 훈민정음의 자형 자체는 독창적인 것”이라는 견해다. 또 ‘천(·)·지(ㅡ)·인(ㅣ)’의 기본자를 바탕으로 초출자(ㅗ,ㅏ,ㅜ,ㅓ)와 재출자(ㅛ,ㅑ,ㅠ,ㅕ)를 만든 중성(=모음)의 제자 원리는 훈민정음의 가장 독창적인 업적이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훈민정음의 모음이 파스파자의 유모음을 참조한 것이라 해도, 중성을 독립시켜 초성과 더불어 인류 최초의 자모문자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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