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울증인가 봐” 아내가 말 꺼낸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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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당장 사라진다면…’.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 최근, 아내가 독감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고군분투하는 남편의 모습을 그려낸 TV광고가 인상적이었다. 자녀의 교복을 제때 빨지 않아 땀 냄새가 풀풀 나고, 자녀의 등교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 속옷 차림으로 출근을 한다. 자녀들은 급기야 아버지에게 엄마는 도대체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아내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운 경험이 있는 남편이라면 이 광고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40~50대 남성의 경우 아내가 없는 공백은 가위 공포에 가깝다. 아내가 며칠 먹어도 남을 분량의 국을 끓여 놓으면 불안해 한다는 우스개 얘기가 현실이다. 이처럼 아내는 이미 우리 가정의 정신적 가장(家長)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야 ! 나 우울증인가 봐’ 한다거나, 한 술 더 떠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겠어’라고 한다면, 남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겠지만 이 같은 상황은 우리 주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의 아내가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남편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주부들과 우울증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이와는 정반대다.

아내가 우울증을 심각하게 호소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나도 우울증이다!’라는 핀잔뿐이다. 아내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답변일까.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아내를 위해 도움을 줘야 할 남편과 자녀의 역할은 특별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약물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면 격려와 지지, 그리고 취미생활·운동·여행 등 무엇이든 간에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만 있으면 된다. 따뜻한 대화와 웃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남편과 자녀의 말 한마디가 엄마의 마음을 호전시킨다. 지금 당장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를 하며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보면 어떨까.

이구상 서울시정신보건센터 정신건강증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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