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엽, 맞히지만 말고 큰 스윙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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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훈씨가 인터뷰 도중 일어나 직접 스윙을 해보이며 이승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남궁욱 기자]

이승엽 이전의 한국 야구에 '국민타자'가 있었다. 장훈(64)이다. 1960, 70년대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였지만 귀화를 거부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남은 전설의 야구 영웅이다. 그가 이승엽(롯데 머린스)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잠깐 고국 나들이를 위해 16일 입국한 그를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도대체 누가 갖다 맞히는 듯한 스윙을 하라고 한 거야?"

그는 "이승엽의 부진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호통쳤다. 이승엽의 타격 자세, 그리고 보비 밸런타인 감독의 2군행 지시도 "못마땅하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이승엽이 부진한 가장 큰 원인이 타격 자세에 있으며 크게 세가지가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지금의 콤팩트한 스윙이 아니라 볼을 방망이에 붙여서 끌고 나가는 듯한 큰 스윙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둘째는 "체중 이동 때 홈플레이트 쪽으로 중심이 따라 나가는 건 좋지만 그 타이밍이 너무 빨라 몸이 앞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트를 높이 들고 있는 자세에서 스윙이 나올 때 배트 끝이 누워버려 공을 옆이나 밑에서 올려치듯 때리게 된다"는 것이 셋째 지적이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위에서 아래로 때려야 한다는 것.

"이승엽은 홈런타자다. 순발력과 소질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선수다. 갖다 맞히는 콤팩트 스윙으로는 제대로 던진 공을 때릴 수 없다. 그렇게 지시한 롯데의 미국인 타격코치가 무능한 거다. 목소리가 큰 가수에게 작은 소리로 노래하라고 하면 잘하겠는가."

그는 몸쪽 공에 대한 약점 역시 마지막에 지적한 타격 자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엽이 이 세가지를 겨울훈련과 스프링캠프 동안 몸에 익혀뒀어야 지금 적응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장씨는 이승엽의 경기를 도쿄와 지바에서 세번 보았다. 한번은 그라운드까지 내려가 이승엽을 만났지만 부담을 가질까봐 두번은 그냥 관중석에서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내게 인사는 꾸벅 잘했는데 타격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어. 안 물어보는데 가르쳐줄 수 있나"라고 조언을 구하지 않은 이승엽의 태도를 아쉬워 했다.

그는 또 "밸런타인 감독이라는 사람, 표시내고 보여주길 좋아하는 사람이야. 눈앞의 1승, 2승보다 멀리 있는 10승, 20승을 볼 줄 알아야지. 지금 이승엽이 부진하다고 해서 2군으로 내려보내면 어떡하나. 한 타석이라도 더 내보내서 적응을 시켜야지. 이승엽 때문에 진 경기가 몇 경기나 되나"라고 따갑게 비판했다.

그는 이승엽의 부진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는 "(이승엽에게) 지면을 통해서라도 전해 달라"는 당부로 인터뷰를 마쳤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 504홈런 3085안타…타격왕 7차례

◇장훈은=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장훈은 어릴 때 입은 화상으로 오른손잡이에서 왼손잡이가 된 좌투좌타 외야수다. 고교시절 투수 겸 4번타자로 프로 스카우트들의 눈독이 집중됐던 그는 59년 졸업 후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 0.275의 타율을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61년에는 생애 첫 타격왕을 차지했고, 62년에는 타율 0.333, 31홈런, 99타점, 23도루의 기록으로 MVP에 올랐다.

장훈은 타구를 좌.중.우 어느 방향으로든 날려보낼 수 있는 부챗살 타법으로 유명했다. 특히 고감도 타율은 물론 장타력과 도루 능력까지 갖춘 만능이었다. 그는 61~73년에 걸쳐 13시즌 연속 20홈런을 넘어섰고, 70년에는 0.383으로 자신의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도에이-니혼 햄-요미우리-롯데 등 네팀에서 13년간 활약한 그의 생애 통산 타율은 0.319다. 9666타수 3085안타. 그리고 504개의 홈런에 1676타점, 319개의 도루 기록을 남겼다.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것만도 일곱번이나 된다.

그는 81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 90년 일본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지금은 방송해설과 한국프로야구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고 있다.

*** 프리배팅 장외포…21일 1군 복귀 대기

◇지금 이승엽은=2군에서 컨디션 조절 중이며 지난 17일 팀 프리배팅 훈련에서 140m 짜리 장외홈런과 전광판 표지판을 깨뜨리는 130m짜리 홈런을 터뜨렸다. 이승엽은 21일 1군 재등록이 가능하지만 1군에 소속돼 있는 4명의 외국인 선수 중 한명이 빠져야 한다. 지난 11일 2군으로 추락한 이승엽은 4게임에 출전, 10타수 5안타(1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1군행을 기다리고 있다. 이승엽의 1군 시절 타율은 0.233(129타수 30안타), 홈런은 5개에 19타점이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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