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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두뇌의 절반’별명 시카고 사단 핵심 중 핵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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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집무실에서 오바마의 저서를 옆에 놓고 포즈를 취한 발레리 재럿 정권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5일 정권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흑인 여성 발레리 재럿(51)을 백악관 선임고문 및 정부 관계 보좌역에 임명했다. 재럿은 행정부 간 이해조정 등 정치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AP통신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칼 로브와 비슷한 일을 재럿이 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브는 부시를 백악관 주인으로 만든 1등 공신이다. ‘부시의 두뇌(Bush’s brain)’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지난해 8월 백악관 부비서실장직을 사임할 때까지 막강한 정치권력을 행사했다.

재럿은 ‘오바마 두뇌의 다른 절반(the other half of Obama’s brain)’이라고 불린다. 워싱턴 경험이 전혀 없는 그에게 오바마가 정권인수 작업을 맡기고, 나아가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가장 먼저 임명한 건 그를 깊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재럿은 오바마와 부인 미셸의 오랜 친구다. 오바마가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빼면 민주당에서 오바마 부부를 가장 먼저 사귄 사람이다. 그는 1991년 시카고 시장실 부비서실장으로 일했을 때 미셸을 시장 보좌역으로 채용했다. 미셸은 “함께 일하자”고 한 재럿에게 약혼자였던 오바마와 함께 만나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셋은 만찬을 같이했고, 바로 의기투합했다.

오바마보다 연장자인 재럿은 당시만 해도 시카고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던 오바마를 도와줬다.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장을 하고 있는 리처드 댈리 등 시카고 유력인사들과 흑인 지도자들을 오바마에게 소개했다. 재럿은 부유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심리학)과 미시간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이면서 시카고 흑인 빈민층을 돕는 일에 오랫동안 앞장섰다.

95년 오바마가 자서전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발간했을 때 재럿은 축하파티를 열어 줬으며, 2004년 오바마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재정위원장을 맡았다. 시카고의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해비타트’를 경영해 온 그는 이번 대선 때 오바마의 의사결정을 돕고, 자금을 모금하는 일을 했다. 오바마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땐 항상 재럿과 상의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재럿은 캠프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중재하고 조정했으며, 흑인 인권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의 거친 입을 봉쇄하는 일도 했다. 인종 문제가 부각되면 손해라는 게 오바마의 판단이었던 만큼 샤프턴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그런 재럿을 캠프에선 오바마의 “큰 누이(big sister)” 또는 “첫째 친구(first friend)”라고 부른다.

흑인 명문가인 재럿의 집안에는 ‘첫째 기록’을 가진 사람이 많다. 증조부는 흑인으로는 처음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졸업했고, 조부는 시카고 주택건설국장을 지낸 첫 번째 흑인이다. 병리학자인 아버지는 시카고대 생물학과 정교수가 된 첫 번째 흑인이고, 어머니는 아동심리학자다. 두 사람은 오바마 집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재럿은 아버지가 미국 정부의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 차원에서 이란에서 아동병원을 운영할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는 1년간 영국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그 뒤 시카고에 정착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 소년기의 4년을 보냈던 오바마와 닮은 데가 있다. 1983년 윌리엄 로버트 재럿과 결혼했으나 5년 뒤 이혼하고 딸 로라를 키워 온 싱글맘이다. 로라는 하버드대 법대에 재학 중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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