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칼럼>땀 흘려야만 세계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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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96년 4월7일은 한국 야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오리엔탈 특급 박찬호(LA다저스)가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투수로,선동열이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한 날이기 때문이다.그러나 96시즌을 마감하면서 5승의 기적과 5승의 치욕이라는 명암이 두 기린아에 의해 작성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였다.우리를 안타깝게 한 것은 선동열의 부진이었다.30세이브까지가능하리라던 이 한국의 대투수는 5승1패3세이브라는 초라한 기록에 그쳤다.한때는 방어율이 10.
47까지 됐고 2군으로 밀리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그것은 한국 야구의 자존심과도 무관하지 않은 처절한 침몰처럼 느껴졌다.
“나의 모든 것을 해부당한 느낌”이라고 한 선동열의 독백이 아프게 와닿는다.직구와 슬라이더 두개의 구질로 10년 을 넘게 한국 최고의 투수 자리를 지켜온 그였다.구위가 뛰어나도 이 두개의 구질로는 버틸수 없는 것이 일본 프로야구였다.일본구단들이선동열 대책을 시도한 것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대성한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집중분석 대상이 됐던 사 실과 맥을 같이 한다.
박찬호도 물론 예외일 수는 없다.그것은 태산준령을 넘는 관문처럼 느껴진다.문제는 노모처럼 분석된 자신의 데이터를 역이용,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이를 극복할 집념과 복원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야구에 있어 투타의 공방은 허허실실의 무한한 반복을 뜻한다.결국 선동열의 곤욕은 한국 타자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논리로 귀결된다.한국 야구의 나태.불성실.연구 부족으로 이어진다..땀 흘리는 사람에겐 이길 수 없다'는 속담이 있 다.스포츠맨에게 이 속담이 절실히 다가오는 것은 스포츠의 속성 때문이다.1960년대 여자 4백.8백 세계기록 보유자인 북한의 신금단은 10년동안 매일 오전4시30분에 기상,30리씩 달렸고 20㎏의 구간봉을 3백번씩 들어올렸다.10년 간 1백21만5천리를 달렸고 7만을 들어올린 셈이다.“최고속도로 달리는 훈련을 반복하면 목구멍에 단내가 났으며 그래도 악을 쓰고 달리느라면 목이 타들어가고 귀까지 멍멍했습니다.스파이크에 쓸려 네개의 발톱이 빠져나간 때도 있었습■다.
나의 체중을 발톱이 빠져나간 두발에 지탱하고 달리느라면 발이타는듯 아팠고….”69년 11월.노동청년'에 실린 신금단 보고문의 한 구절이다.
바르셀로나.애틀랜타 올림픽 다이빙의 플랫폼과 스프링보드를 석권,금메달 4개를 따낸 중국의 푸밍샤(18)는 매일 10시간 1천회 이상 잠수할만큼 고된 훈련을 받았다고 밝혔다.
스포츠처럼 노력에 대한 반대급부가 정확히 반영되는 분야는 없다.한 시즌의 결과를 갖고 평가하기엔 스포츠는 너무나 많은 변수를 지니고 있다.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 신금단과 푸밍샤의 땀은 타산지석이 된다.세계를 노리는 선수들에겐 더욱 돋보이는 얘기가 된다.
(KOC위원.전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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