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 감독 기자회견 논쟁적 다큐 '화씨 911'선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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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올 칸영화제에서 가장 논쟁적인 경쟁작으로 꼽혀온 다큐멘터리 '화씨 911'의 기자회견은 예상대로였다. 회견장을 빽빽이 메우고도 입장하지 못한 기자들이 TV 생중계 화면 앞에 운집해 감독 마이클 무어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무어 감독은 "멜 깁슨의 영화사가 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계약서를 쓰고 제작비의 일부까지 보내왔으면서도 뒤늦게 발을 뺐다"면서 "백악관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독은 이런 와중에도 멜 깁슨의 말투를 익살맞게 흉내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는가 하면 영화 속에서 부시 일가와 오사마 빈 라덴 일가의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문서를 직접 들고 나오기도 했다. 묵직한 이슈를 적나라한 직설화법과 상대에 대한 조롱으로 요리해 대중적 재미로 만들어낸 '화씨 911'의 솜씨 그대로다.

무어는 부시 행정부가 최근 이라크 포로들에게 미군이 저지른 일을 병사들의 인성문제(failure of charater)로 돌린 데 대해서도 맹비난을 퍼부었다. "나라를 지키고, 대량살상을 막는 고귀한 임무를 위해 파견된 병사들을 비도덕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비도덕적인 행위"라면서 "부시야말로 반(反)군대적인 인물(anti troops person)"이라고 했다.

기자들의 관심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지에 모아졌다. 무어 감독은 "주말 저녁에 나 스스로 극장에서 볼 만한 재미있는 영화, 울고, 웃고, 두고두고 얘기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일차적인 동기였다"면서 "제작사인 미라맥스를 믿는다"고 말했다.

세계적 흥행 성공을 거둔 전작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미국인들이 총기를 남용하는 원인을 "미디어의 이미지 조작으로 만들어진 공포"로 설명했던 그는 이번 영화 역시 집단적 공포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9.11 이후 부시 행정부는 미국 사람들이 후세인에 대해 겁을 먹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그는 "나는 두렵지 않다"면서 "백악관에서 시사회를 연다면 기꺼이 참석할 것이고,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해 또한번 기자들을 웃겼다.

그는 각국의 기자들을 향해 "정말 가까운 친구는 얼굴에 대고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프랑스를 비롯, 부시 행정부에 제동을 걸어 온 나라들을 "그런 고마운 친구"라고 했다.

곧이은 공식 상영장의 풍경은 '논쟁적'이기보다는 '일방적'이었다. "이라크에 다시 가느니 감옥에 가겠다. 우리에게 위협을 하지 않은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와 같은 참전병사의 말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영화 초반 감독의 이름이 나오는 자막에서부터 수시로 박수가 터졌다. 전반부의 웃음에 이어 영화 후반부는 이라크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처럼 눈시울을 자극할 만한 장면을 오래도록 보여줬다.

칸(프랑스)=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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