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건 사랑의 말 걸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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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기 사이에 책만큼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없어요.”

일본의 북스타트 운동을 이끌고 있는 ‘북스타트 재팬’ 시라이 데쓰(白井哲·61·사진) 대표의 설명이다. 14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08 북스타트 전국대회’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시라이 대표는 1969년부터 30여년 간 일본 최대 출판사 고단샤의 국제 업무를 맡았던 일본 출판계의 ‘해외통’이다. 2000년 일본의 ‘어린이 독서의 해’를 맞아 해외 독서 운동의 현황을 조사하면서 북스타트 운동을 알게 됐고, 2001년부터 ‘북스타트 재팬’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왜 꼭 책이어야 하나.

“북스타트의 지향점은 읽기(Read)가 아니라 공유하기(Share)다. 아기에게 책을 읽히자는 게 아니라, 그림책을 통해 부모와 아이가 즐거운 한 때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가장 좋은 매개체다. 책은 옆에서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으면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장난감은 아기 혼자 갖고 놀 수 있지 않은가. 또 책에는 그림이 있고 리듬감 있는 말이 넘쳐난다. 책을 통해 부모는 아기에게 사랑의 말 걸기를 할 수 있고, 아기는 사랑받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일본의 북스타트 운동은 만0세 정기검진을 하러 보건소에 온 아기들에게 그림책 두 권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왜 두 권인가.

“북스타트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운동이 아니다. 책과 접하는 계기를 이른 시기부터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 권을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을 한 권만 주면 그 책이 모든 책을 대표한다는 잘못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두 권’은 세상에 여러 종류의 책이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출판사 마케팅용으로 ‘악용’될 우려는 없나.

“북스타트 운동이 출판사 입장에서 미래의 독자를 확보한다는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북스타트 선정 도서는 각 출판사에서 정가의 50% 수준에 납품한다. 이윤이 거의 없는 가격이다. 책 선정 과정에서도 출판사들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일본의 북스타트 운동은 이제 8년째다. 그간의 성과는.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는 건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림책과 즐거운 체험을 했다는 게 바로 북스타트의 성과 아니겠는가. 또 ‘북스타트를 계기로 도서관에 다니게 됐다’는 의견도 많다. 북스타트 책을 전달할 때 각 지역 도서관에서 만든 권장 도서 목록과 아기들의 도서관 카드도 함께 준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 도서관을 이용하는 부모와 아기들이 늘어났고, 각 도서관의 영유아책 코너가 충실해졌다.”

이지영 기자

◆북스타트 운동=‘책으로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에서 벌이는 영유아 대상 독서 캠페인이다. 1992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독일·스위스·벨기에·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등으로 확산됐다. 아시아에서는 일본(2001년), 한국(2003년), 태국(2004년), 대만(2006년) 등의 순으로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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