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방글라데시 근로자의 한국부인 모임 '파랑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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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외국인 근로자를 반려자로 선택한 한국 여인들에겐 단순히 남편의어려움을 함께하는 것과는 또다른 차원의 아픔이 있다.남편의 고통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로 인한 것이라는 죄스러움과 어디에도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곳 없는 막막함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각별한 정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파랑새'-.이는 방글라데시 근로자들과 결혼한 한국 주부 5명의 모임이다.어려움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자는 뜻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남편들을 통해 서로를 안 지는 고작 1~2년.하지만 정만큼은 남다르다.시간을 정해놓고 만나기 보다는 평택.안산등 각자의 집에서 한달에 한두번 부부동반으로 방문하며 모임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강하게 붙들어매 주는 것은.설움'이라는 공감대다.이는 대개 자신들에게 너무 소중한 남편에게 쏟아지는 차별들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94년5월 결혼한 김미화(26.경기도시흥시신천동)씨는 남편의비자신청을 위해 관계당국에 찾아갔을 때 그곳 직원으로부터“한국에도 남자가 많은데 왜 저런 사람하고 결혼했느냐”는 말을 들었다.이런 무례한 질문이 예외없이 퍼부어진다는 사 실을 확인한 건 그 직후 모임에서였다.
당당하게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사고자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한 쇼핑센터의 점포주인에겐“니네들이 무슨 재주로 비싼 물건을사느냐”며 아예 내몰림을 당하기도 했다.
아들 나임이를 낳은 직후 산후조리를 위해 호박을 사오겠다며 기쁜 얼굴로 집을 나선 남편이 잠시 후 몹시 화난 표정으로 돌아왔다.호박 장수의 면박에 남아 있는 호박 2개를 모두 샀단다. 무조건 반말부터 내뱉는 경우는 하도 많이 겪어 이젠 덤덤하다.남편으로부터“그래도 한국사람인 당신과 함께 다닐 때는 혼자일 때보다 훨씬 인간대접 받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하지만 대개 주변의 완강한 반대를 꺾 고 결혼한 이들이기에 이런 고민들을 친정식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다.따라서.파랑새'는 이들의 유일한 고민상담창구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모임이 넋두리 성격만 띠는 것은 아니다.의료보험,남편과 아기의 국적문제,비자등 법률적인 어려움등을 함께 생각하며 풀어간다.특히 아기의 의료보험문제는 모두에게 큰 금전적인혜택을 주었다.아울러 방글라데시의 풍습이나 회교 문화에 대해서도 서로 아는 바를 나눈다.
유일하게 방글라데시를 못가본 나경순(26)씨는 이들을 통해 닭요리의 일종인.부나'와 계란을 재료로 하는.바자'등의 조리법을 배워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사실 이들에게.파랑새'만큼 고마운 건 없다.외국인 근로자들에대한 한국사회의 굴절된 시각속에서는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기때문이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남편과 아이들의 한국국적 취득등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한층 빨리 성취되리라 믿는다”는 나씨의 말에서한가닥 희망을 읽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일까.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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