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평화가 성취되는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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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대인들은 만나면 서로.샬롬(Shalom)'하고 인사를 나눈다.그들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축복은 평화라고 생각했다.그들이말하는 샬롬은 우리말의 평화(平和)라고 번역되지만,그 단어가 담고 있는 뜻은 매우 깊고 넓다.
그런 폭넓은 의미에서 새해는 우리사회에 평화가 이뤄지는 해가됐으면 좋겠다.
첫째,우리나라의 남과 북 사이에 평화가 이뤄지기 시작하는 해가 되기 바란다.97년은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지 80년 되는 해다.20세기에 일어난 그 많은 비극중 뇌리에 남는 비극은 공산주의와 관계된 사건이 대부분이나 다 행히도 공산주의 세력은 무너지고 소위 철의 장막은 사라져가고 있다.그러나이 지구 위에서 이러한 철의 장막이 보다 더 닫혀 있고 굳어 있는 지역이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다.
올해가 남북간의 두터운 벽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평화의 서광이비쳐오는 해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두 눈이 균형을이뤄야 한다.한쪽 눈은 우리와는 아주 다른 체제의 실상을 똑바로 보고 어떤 환상이나 낭만이 아닌 냉정하고, 타산적이고,합리적인 자세로 긴장을 완화해 가는 방안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다른 한 쪽 눈은 같은 동포라는 따뜻한 온정을 가지고 두터운 얼음벽을 녹이는 일을 해야 한다.
냉정하고 타산적인 접근은 위정자들이 주로 해야 하고,온정적이고 동포애를 가진 접근은 민간인들의 몫이다.남북간의 평화적인 접근은 정권을 맡은 사람들과 민간인들간에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주는데서 비롯된다.이 일을 새해부터 시작하면 9 7년은 남북간평화가 실현돼가는 첫해가 되리라 믿는다.
다음으로,우리가 사는 남한에서는 특히 지역간.도농(都農)간.
세대간.성별간의 평화가 실현돼야겠다.남쪽에서 이런 평화를 실현하지 못하면서 남북간의 평화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우리 사회의 이런 양극화 현상 중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산업계의 평화다.새해에는 근로자들과 사용자,정부간의 마찰이우리 사회를 어디까지 몰고갈지 걱정스럽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정부당국.여당.기업측이 70년대의 고도성장정책을 추진할때부터 되풀이 약속해온 선성장(先成長) 후분배(後分配)정책을 이제는 균형있는 나눔에 초점을 맞춰 지체없이 실현하는 것이다.
국제수지의 균형이나 선진국 대열에 이르기 위한 세계화등의 구호로 근로대중을 잠재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노동기구(ILO)회원국들의 노동정책과 비교해볼때 선진 대열에 서지는 못하더라도 후진대열에 서서는 안된다.예를 들어 복수노조 문제나 제3자개입금지 조항등은 좀더 거시적이고 세계적인 안목에서 이해해야 한다.노조와 야당은 96년에70억달러 적자를 거듭 약속하던 한국경제가 이유야 어찌되었건 예상했던 적자폭의 3백%를 넘어선 이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지혜롭게 해결해 보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평화의 실현이라는 큰 목표를 향한다면 풀어갈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특히 97년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다.대통령후보중 누가 좋겠는가,어느 정당이 비교적 나은가 하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나는 우선 위에서 말한 남북간.지역간.노사간의 평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해갈 청사진과,의지와,능력이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는 2003년초에 끝나니 21세기를 여는 대통령이다.70년대 이래 개발독재와 민주화세력간에 대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이제는 부정적 발상에 의한 투쟁형이 아닌,진정 민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지도자가 나와야겠다.
항간의 말대로.개미'의 시대는 가고 공중에 그물을 치고 그 그물을 느슨하게 연결시켜가는.거미'형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수직선적인 독단형의 인물이 아니라,오늘 같은 다원화 시대에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다양성 속에 일치를 모색해 협동시키는 수평선적인 지도력이 나오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이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낡은 시대의 체질을 바꾸지 못하는 기성정당에만 맡기지 말고 국민대중속에 형성된 각계각층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국민대중의 광범위한 협동이 있어야 한다.그리하여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권력은 국민으로 부터'라는 헌법의 정신이 실현되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姜元龍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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