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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세희 “난쏘공 시험내면 난 빵점 맞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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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세희 작가는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고 생각해달라”며 '난쏘공' 출간 30년 소감을 밝혔다. [강정현 기자]

1978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연상시키는 동화같은 제목의 책이 한 권 나왔다. 조세희(65)의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이었다. 동화적 기법이 쓰인 건 분명하지만 내용은 결코 예쁘지 않은, 일종의 잔혹동화였다. 산업화의 열풍 속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난장이 가족의 비극은 70년대 한국 사회의 그늘을 생생히 보여줬다. 검열을 피해 “죽지 않고 독자에게 전해지길” 바라던 작가의 희망은 기대 이상으로 이뤄졌다. 2008년. 『난쏘공』은 이미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여전히 한 해 5만 부 이상이 독자 손에 들려나간다. 그 출간 30년을 반추하는 기자간담회가 11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렸다.

30년은 한 세대가 교체되는 세월이다. 운동권 필독서로 읽히던 책이 지금은 중고교 추천도서가 됐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난장이가 사는 곳이 낙원구 행복동이라 이름 지은 이유가 뭔가요?”란 질문에 “아이러니 수법에 의한 반어적 풍자”란 답이 올라있다. 이미 교과서적인 소설이 돼버린 것이다.

“난쏘공으로 시험문제를 내면 난 빵점 맞을 겁니다. 내 문학이 이렇게 (시험용으로까지) 쓰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그 글을 쓸 때의 상태가 지속되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없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쓴 거예요.”

올해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독자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시대 한국의 대표 작가’로 조세희가 선정됐다. 『난쏘공』을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원고지에 옮겨 적으며 습작을 시작했다는 소설가 이순원(50)의 이야기처럼 문인들의 정신세계에도 난장이 가족은 깊숙히 자리를 잡았다.

“이런 평론집 내자는 얘기가 나온 후, 집에서 앨범을 봤어요. 한 청년이 배시시 웃고 있더라고. 그게 나야. 30년 동안 배시시 웃던 밝은 청년이 사라지고 난 이제 일흔을 앞둔 늙은이가 됐네요. 지나간 시간이 이렇게 무서워요. 이걸 알았더라면 더 좋은 글을 썼을 텐데.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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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리얼리즘’을 넘어서, 교차편집·클로즈업 등의 영화적 기법에 알레고리(상징)·우화 등의 ‘모더니즘’ 기법을 써 문학적으로도 강펀치를 날린 작품이었다. 권성우(45) 숙명여대 교수가 엮은 30주년 기념 문집 『침묵과 사랑』(이성과힘)에는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에 대한 헌사가 담겼다. 김우창·김병익·최윤 등 동료·후배 문인 20명이 『난쏘공』을 다각도로 조명한 글이 실렸다.

“나는 농경사회에서 나왔어요. 산업사회에 도착해서 『난쏘공』을 썼고 지금은 정보화 사회라고 하죠. 두 세기에 걸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새로운 세기의 흔적인 이 문집을 『난쏘공』과 떨어지지 않은 한 책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네요.”

14일엔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주최하는 기념 낭독회와 기념문집 헌정식이 열린다. 배우 조재현이 『난쏘공』과 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낭독하고 조세희씨는 집필 중인 신작 『하얀 저고리』를 읽을 예정이다. 신작은 작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난 송장 세대예요. 늙고 아파 보니 집중이 안되더군요. 젊을 때 나에게 뛰어와 ‘나 써 줘’라던 단어들이 사라졌어요.”

그러나 작가의 집필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남들이 안 쓰는 거 나라도 써야겠다는 사명감은 여전합니다.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등은 그대로 두면 안돼요. 『하얀 저고리』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지만, 계속 써갈 겁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가의 촉수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난 여러분의 세대를 믿어요. 우리보다 더 큰 싸움을 앞둔 미래의 세대를요. 우리 세대는 자식에게 줄 직장 하나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했어요. 여러분의 세대에선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여러분의 자식 세대는 더 똑똑해져서 미래의 일들에 더 잘 대처하지 않을까요.” 

임주리 기자 , 사진=강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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