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국립미술관 소장 루벤스 그림 '삼손과 데릴라'는 가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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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96년을 마감하는 영국 미술계에 우울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런던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루벤스의 그림.삼손과 델릴라'가 가짜임이 판명됐다고.더구나 현재 런던국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루벤스전은 연말연시를 맞아 성황을 이루고 있어 관계자들을 더욱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올해초부터 일기 시작한 루벤스 위작설은 국립미술관측과 미술감정가들 간에 격렬한 공방전을 불러일으키며 미술계를 둘로 갈라놓았다.그러나 최근 루벤스의 조국인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위작을 증명할 결정적 단서가 발견됨으로써 1년을 끌어 온 논쟁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하는 미술계보전문가얀 칼루워츠는.삼손과 델릴라'의 원소유자인 안트베르펜의 니콜라스 로콕스 가계를 조사한 끝에 로콕스 집안이.삼손과 델릴라'를판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루벤스가 말년을 보낸 안트베르펜의 유지였던 로콕스경은 루벤스에게.삼손과 델릴라'를 그려달라고주문했으며 루벤스가 완성한 이 그림은 1712년까지 이 집안에보관됐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손과 델릴라'를 런던국립미술관측은 지난 80년 크리스티경매를 통해 현시가로 6백만파운드(약 64억원)에 사들였는데 크리스티측은 당시 이 그림이 리히텐슈타인공국의 왕가소유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림의 소유주였던 리히텐슈타인의 왕이 이 그림이모조품임을 시인한 적이 있으며 크리스티경매측도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일부에서 제기돼 왔다.
특히 긴장된 힘과 거대한 에너지를 특징으로 하는 루벤스의 필치가 이 그림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많은 미술전문가들의 의구심을 더욱 부채질해왔다.
단 한번 붓을 휘둘러대 2나 되는 화폭도 메우는 루벤스의 힘은 이 그림에서 간데없고 대신 가늘고 지리멸렬한 선들 투성이라는 것. 한편 런던국립미술관측은 과학적 검증 결과 이 그림은 제작시기가 루벤스가.삼손과 델릴라'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1609년과 일치하는 만큼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며 강경한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 나선 얀 칼루워츠는 루벤스가 타계한 안트베르펜에서 예레미아 윌덴이라는 화가의 기록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얀 윌덴은 루벤스가 풍경화의 배경처리를 위해 조수로 고용한 화가였는데.삼손과 델릴라'의 원작은 오래전에 실종됐다고 말했다는 것.
이것이 런던국립미술관 소장 작품은 위작이라는 결정적 증거다.

<최성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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