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사실혼과 법률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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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2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의한 것은 1929년의 어느 봄날 루브르 박물관의 돌 벤치에서였다.보부아르는깊이 생각지도 않고 동의했다.정열에 있어서는 남녀가 평등하다는스탕달의 애정관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사르트르가24세,보부아르가 21세 때였다.2년후 서로의 직장관계로 떨어지게 됐을 때 사르트르는 정식으로 결혼할 것을 제의했지만 보부아르는 숙고끝에 .단기계약'을.장기계약'으로 바꾸는데만 동의했다. 사르트르가 자신의 자유.사상.청춘을 버리고 가장(家長)으로서의 가정적 의무에 매달릴 사람은 아니라고 본 보부아르의 판단은 옳았다.더구나 둘이 똑같이 사회적 관습을 혐오해 얽매이려하지 않았음에랴.말년의 회고록에서 보부아르는 처음으 로 그들의관계에.사실혼'이라는 표현을 썼다.덧붙여 서로간의 엄청난 이성관계 때문에,만약 법적인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사이였다면 가정파괴의 위기를 수없이 겪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80년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이들이 반려자.협력자로서 해로(偕老)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간의 사랑과 이해와 신뢰 때문이었다.그래서 이들의 관계는.사실혼'이나.
계약결혼'에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꼽힌다 .
이들은 실천에 옮긴 한 예지만 논리적으로.합법적 결혼'의 문제를 제기한 학자들은 많다.자유주의적 성개혁자들은.법적 결혼에의한 가정은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권위주의적 인간구조를 양산하는 장소'라기도 하고,.좀처럼 식지 않을 깊은 사랑은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사랑에 한 발을 들여놓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물론 그같은 주장들은 요즘 프리섹스의 개념과는 다소의 차이가있다.하지만 우리네 관점으로는 가족제도의 붕괴나 성도덕의 추락과 긴밀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문제는 사실혼이든 법률혼이든 결혼의 양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사 랑.이해.신뢰가 어느 정도냐에 달려 있다.3년간 동거했던 여성이 혼인신고를하자 남성은 무효소송을 냈고,가정법원은 .무효'판결을 내렸다.
이제까지의 판례를 뒤엎은 것이니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되지만 이경우 역시 사실혼이냐,법률혼이냐의 문제만은 아닌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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