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잃어버린게 아니라 잊고 있었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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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03면

엄마를 잃어버렸다. 뿔나서 가출한 것도 아니고 잃어버렸단다. 장성한 다섯 남매가 살고 있는 서울에 생일상 받으러 왔다가 북적대던 지하철역에서 그만 손을 놓쳤단다. 소의 눈을 닮은 큰 눈을 끔벅이던 여자. 남편이 들인 젊은 여자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도 “커서 검사가 되겠다”는 아이 약속에 두말 않고 돌아왔던 여자. 도시로 나온 네가 늘 화내듯 “엄마가 알아서 뭐 할건데?” 쏘아붙일 때, “김치 담가 부쳤다”고만 하고 전화 끊던 그 여자, 대체 어디로 사라졌나.

자전적 장편 『엄마를 부탁해』 펴낸 소설가 신경숙

소설가 신경숙의 새 장편 『엄마를 부탁해』(창비)가 단행본으로 나왔다. 2007년 겨울부터 올 여름까지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연재됐던 원고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하는 작품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전개된다. 엄마를 찾기 위한 가족의 노력 속에 화자는 딸(1장)-큰아들(2장)-아버지·남편(3장)-어머니·아내(4장)-딸(에필로그)로 계속 바뀐다. 기억이 모자이크처럼 맞춰지면서 묻혀 있던 ‘박소녀’가 떠오른다. 프릴 원피스를 원했지만 입을 기회가 없었던 여자, 한글은 몰랐어도 딸이 쓴 소설이 궁금해 남한테 읽어 달라 청했던 여자, 자식들 때문에 내쳐야 했던 연심을 남몰래 품고 살았던 그 여자.

1990년대 문단의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대표했던 문장들은 여전하다. 어머니를 지닌 모든 존재들에게, 수돗물처럼 가슴에 똑똑 떨어진다.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 세상인디…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어서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커버리니까는 니가 자식인데도 두렵데.” 꽉 차 있던 애끓음이 그 몇 방울에 흘러 넘친다.

단행본에서 달라진 것은 원고지 100여 장에 이르는 에필로그를 붙인 점이다. 시작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새삼스레 되살아나는 엄마의 사소한 말들. 외로울 때 내 등을 토닥여준 사람이었건만 때로 그 삶을 실망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기까지 했다. 엄마를 잃기 전부터 실은 잊고 살았던 것이다. “한 세계 자체”(275쪽)였던 엄마를 다시 찾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말할 기회가 올까.

『외딴방』을 연상케 하는 자전적 신작을 가리켜 평론가 백낙청은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자 “최고의 성공작”이라 평한다. 피붙이 식구들의 끈끈한 정을 절절하게 써내려 가는 필력은 신경숙만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내성적인 글쓰기로 인해 ‘전근대적이고 감상적’이라는 비판도 더러 들었지만, 그것을 ‘신경숙다운’ 모성 예찬으로 숙성시켰다.

『풍금이 있던 자리』로부터 『딸기밭』『기차는 7시에 떠나네』『리진』 등 이제까지 주요 텍스트가 모두 녹아 든 신작은 “자신의 삶을 필사하며 다시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소설”(평론가 정홍수)과 다름없다. 사석에서도 늘 말 없이 귀만 기울이는 작가는, 남들이 다 잊었을 즈음 쟁여둔 기억을 펜대로 놀린다. “글을 쓰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나는 모른다”(작가 후기)는 그에게, 잃어버릴, 혹은 잊혀질 위기의 한국 문학을 부탁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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