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2세 동포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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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선 미국언론에 비친 한국의 일그러진이미지와 한민족정신(Korean Ethos)에 관한 전문가토론회가 잇따라 열렸다.코리아 소사이어티와 KAJA(미국언론기관에서 일하는 한국계 기자단체)가 각기 주최한 열띤 모임이었다.미국의 여섯번째 큰 무역상대로 떠오른 한국이 미국 주류(主流)사회를 파고들지 못하는 갑갑증과 답답함을 토해냈다.쳐내려온 북쪽잠수함이나 몽둥이를 든 남쪽 등 남북한을 싸잡아 다스리는 미국이 야속했다.뜯긴 정치헌금이 영향력 은커녕 배보다 배꼽이 큰 벌금이 물려질뿐 돈쓰고 뺨맞는 서투른 로비도 도마위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은 삐걱거려야 기름을 쳐주는 사회다.소수민족은 제목소리를 내야 산다.저마다 대변지가 있는 언론천국에서 영어신문하나 없는 벙어리 민족이라는 탄식이 2세기자들 사이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미국 정치.경제의 안방을 차지하 고 있는 유대민족은 정경(政經)의 쌍칼을 거머쥐기전에 아들.딸들의 적성과 끼를 살려 다방면의 전문직에 고루 진출시켰다.특히 언론과 예술등 미국을 움직이는 정수리를 틀어쥐고 있는게 그들이다.그러나 한때 2백명에 이르던 한국계 기자회 원은 1백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일본과 중국계가 주도하는 AAJA(동양계 언론인단체)회원이 2천명으로 늘어 큰 압력단체로 커가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기자회의에 패널리스트로 나온 젊은 여기자에게 몇마디 건네보았다.월스트리트 저널을 거쳐 미 서부 백인지역의 대표적 지방지에서 일하는 편집기자다.
-한국말은? “어려워서 못해요.” -한국문화는? “그거 중국것 아닙니까.” -자동차는? “혼다(일제)를 몰지요.” -한국차도 있는데? “부서질 것같아 안탑니다.” 서부에서 네번째 큰일간지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써내는 글발을 다듬고 있는 편집자의한국관이 이 정도다.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는 1천만명을 넘어섰다.한국과 일본.중국.필리핀계가 근 2백만명씩 고만고만한 키재기를 하고 있지만 이들 이웃민족은 상.하원의원은 물론 주지사까지 내고 있다.이번 선거에서 워싱턴주지사에 당선된 중■계 게리 로키는 아홉살까지 영어 한마디 못 배운 이민 2세였다..다음세기에 동양계 대통령은 나올 것인가.'아시아의 세기를 내다 보면서 중국계 영자신문은 벌써 이같은 비전을 다루고 있다.
한국이민의 미래는 2세에 달려있다.재미동포 인구중 39세이하가 70%에 이르는 잠재력이다.하지만 숫자가 저절로 힘을 낳지못한다.얼마전 NBC-TV는 인기프로 데이트라인에서 봉재공장의임금착취와 미성년자 취업 등 이른바 악덕업소실 태를 20분간 방영했다.바느질 훈련까지 받은 기자를 위장취업시켜 몰래 카메라로 그 어두운 실상을 생생하게 비춰냈다.불법체류자가 돼 이 아슬아슬한 보도를 해낸 기자는 한국인 2세 여기자였다.
한국의 아들.딸이라 하여 터무니 없는 애국심을 기대할 수 없다.미국태생 2세들의 타민족과의 결혼율이 2명에 1명꼴로 높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함인가.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못느낄 때 그들은.아시아인(人)'으로 동화한다.동양인 둔갑은 일본이나 중국권에 빨려듦이다.주류사회에 발딛고 타민족과 연대하는 몸부림속에서 튼튼한 문화적 뿌리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할 때 그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
우리는 2세들이 미국인이면서 한국인이기를 요구하지만 그들은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 돼야 하는 딜레마속에 있다.더욱 서글픈 일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될 수 없는 정신적 무국적상태다.우리말을 못 한다고 밉게만 보지 말고 각분야의 전문직에 서 뻗어가고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얼과 문화를 전달해 일체감을 길러주고 이들의 창의력을 결집할 수단(Vehicle)을 만들어 주는 것은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崔圭莊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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